(말이 나왔기에 한가지더 언급하는데 연중행사는 그뿐이 아니다 목욕도 연중행사다 여름철 고추 내놓고 저수지에서 미역 감으며 자연적으로 씻어진 후에는 설 명절 때나 가마솥에 물 데워가지고 겨우 한번 씻는다. 그때 그 시절 또 한 가지 누구나 있었던 그것 바로 “이” 내의 이음매부분을 잘 살피면 목욕을 한번도 안 해서 쌓인 그 많은 피부 각질 먹고 자란 하얗고 뽀얀 포동포동 살찐 석회 알 옷이 타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석유심지 등잔불에 대면 단백질 굽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따다닥 따다닥 뻥튀기 하며 죽는다. 연중행사 이외 많은 추억들은 끝말 잇기로 남겨두고 끝)
닭 울음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설빔으로 멋있게 치장한 나는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을 짓누를 수 없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부모님을 마주하고 줄지어 세배 하면 이내 세배 돈을 쥐어주시던 아버지의 후덕함도 설날이 오면 가슴을 파고드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후덕하고 정겨운 아버지의 덕담과 어머니의 애틋한 미소는 지금도 가슴깊이 박혀있는 그리움 속 설날의 추억이요 돌아가고 싶은 옛 시절 설날 풍경이다.
동네 어귀로 달려 나간다. 이웃의 어르신 일가친척들을 뵙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배를 드리고서 이내 주머니를 즐겁게 한 세배 돈을 움켜지고 가게로 달려가곤 했던 그날의 행복들은 지워질 수 없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이야기이다. 물통테두리를 갈아서 칼날 세워 만든 스케이트를 논에 물을 가두어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타고, 팽이치기 재치기,제기차기 즐거움은 정월 초하루 그 설날의 동심에는 그지없는 기쁨 이었다. 솔찍히 나는 이러한 놀이를 즐기기는 하였지만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다. 다마(구슬) 치기는 신만수와 조영국 그리고 광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잘했던 걸로 기역된다. 설날 전야에 회상하는 어릴 적 설날의 풍경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리움의 그림이다. 찢어진 검정 고무신 대신 운동화, 꿰매고 허름한 헌옷 대신 새 옷, 고기국과 음식 일년에 한번 명절 때야 맞보는 이모든 것들의 행복감이란 산술적으로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문명사회인 현재 그때만큼 행복지수가 높은 것을 찾아보아도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문명사회의 살기 바쁜 세상이라지만 세파속의 파고를 넘어서서 한번쯤은 여유롭고 풍요로운 설날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대를 살아가는 검지세대들이 내가 경험했던 한 폭의 설날풍경을 잠깐이라도 갖게 해줄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할 수 는 없을 터인데 시대의 풍경이 저지하는 장애물로 다가서는 설날전야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중이다. 설날 그 그리움 속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