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열한번째 글..

2001. 2. 26. 오후 12:50:10

글자

봉사지를 방문해야 하는 넷째주 주일 아침은 항상 나를 괴롭게 한다.

주일 아침.. 5시 30분..

일어나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잘 것인가를 두고 귀중한 30분을 고민했다.

밤새 따뜻하게 덮혀놓은 이불 속은 나를 쉽사리 놔주질 않는다.

그냥 자면 앞으로 한시간은 넘게 잘 수 있다는 유혹과 함께,

밀린 숙제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요일까지는 내야하는 피정 보고서와 당장 내일까지 완성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숙제..

아!~~ 사는 것은 이다지도 괴롭단 말인가!!~~  

숙제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고민을 하면서, 일주일 동안의 긴 시간동안 펑펑 놀다가 꼭 하루전에 숙제를 하느라 몸부림을 치는 내 자신이 마구마구 한심스러워졌다. 이번주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숙제를 해버려야지. 그런데 이번주는 화요일까지 피정 프로그램을 완성해야하는데... 그러면 또 숙제를 못하고... 나중에 생각하자.

 

헉헉대며 고속버스터미널 3층까지 뛰어올라갔다. 조금 있다가 영수언니가 오고 이내 감감무소식.. 걱정을 사서하는 성격인 나는 이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가지 걱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왜 이렇게 안오지? 연락이 잘못되었나? 명동에서 따로 출발하기로 한 사람들은 다들 왔을까?

곧이어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명동에서 출발하기로 한 현금언니다.

왜 아직도 안오냐고 묻는 언니한테 두군데서 따로 출발하기로 했다고 설명하면서 그쪽에 누구누구 왔냐고 물었다. 그런데.. 허걱~~ 벌써 다섯명이란다. 토마스도 그쪽으로 가기로 했는데...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차 한대에 일곱명이(?)..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지.. 내뜻대로 되는 일은 한개도 없다. 뭐하나도 제대로, 완벽하게 못해내는 나 자신에게, 엉뚱하게 흘러가는 일들에 혀를 끌끌 차다가 급히 토마스한테 전화했다. "여보세요~~" 순간 잠결에 취한 토마스의 목소리...

한편으론 기가막히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안심이다.. 그럼 여섯명이네..

결국.. 길을 아는 현금언니만 따로 출발하기로 하고 봉사지를 향해서 출발..

 

10시가 조금 안되서 ’성요셉의 집’에 도착했다.

따뜻하고 반가운 웃음으로 반겨주시는 수녀님들.. 거의 3개월만에 온 봉사지니 감회가 새롭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선 식당으로 들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인사부터 드리고, 상앞에 둘러앉아 차를 한잔씩 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봉사 시작..

뒷산에 있는 나무토막들을 모두 밭에 모아서 태워달라는 수녀님의 말씀대로 다들 나무토막을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부는 던지고... 일부는 들어서 옮기고...

한시간 조금 넘게 일하다가 11시 30분에 있는 미사시간에 맞춰서 내려왔다.

수화로 봉헌하는 미사시간..

이젠 조금씩 눈에 익는 것을 느낀다. 서툴지만 한박자씩 늦게라도 따라하면서 아는 만큼 표현이 안되는 내 손짓에 혹시 내가 지능이 약간 떨어지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해본다.

 

미사가 끝나고 곧이어 점심시간..

피정온 팀이 있어 ’피정의 집’에 못들어간 관계로 수녀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신다. 수녀원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왜일까? 스스로도 밥을 좀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먹어치우고 있는데 옆에서 베드로 선배가 한마디 거든다.

"난 네가 이렇게 밥 많이 먹는거 처음봤어."

흑흑~~ 민망해라~~

오후부터는 다른 작업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화단 만들기’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에 했던 일이 더 쉽다. 눈이 녹으면서 땅이 질어진데다가 아래에서 위로 날라야 하는 모래주머니와 뒤쪽에서 퍼와야하는 흙더미는 온몸의 진을 다 빠지게 한다.

work camp가 떠오르는구나!!

’아아~~ 누가 적당한 노동은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던가!~~’

다들 정말 온몸바쳐 열심히 일한다.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오히려 서로 쉬라고 다독이면서.. 다른이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봉사하려는 우리 엠마우스 식구들에게 새삽스럽게 고마움을 느낀다. 역시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분들이랑께..

 

4시까지 열심히 일하고 서서히 서울로 올라올 준비를 했다. 10~11일날 있을 예정인 피정에 대해서 수녀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엉망이 된 몰골을 조금 추스린 다음.. 서울로 출발...

갑자기..

운전하시는 베드로 선배님과 바오로 선배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야 뒤에 앉아서 편하게 왔다갔다 하지만... 두분은 일도 열심히 하시고 운전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피곤하실까..

또다시 새삼스레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드는 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안아픈 곳이 없고, 쑤시지 않는 뼈마디가 없다. 밥 ’많이’ 먹고 바로 일하느라 조금 체한것도 같고 춥게 일해서인지 머리도 아픈 것 같다. 뒷자리에 앉아 몸을 기대고 곧이어 눈을 감는다. 그리곤 정신없이 자느라 말이 없어진 나.

 

도착하고 보니 충무로다.. 거의 7시미사에 맞춰 명동성당에 도착..

베드로 선배는 미사하러 들어가고, 바오로 선배는 집으로..

남겨진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세상사는 이야기’로 향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또다시 데모하는 학생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역시 자리하고 있는 전경들..

또 다른 부류인 우리들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 밥을 먹고 술을 한잔씩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다가 느즈막히 오늘 하루를 접는다.

 

 

p.s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보이는 한강의 야경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 지금 이시간,

    어제를 되돌아보면서..

    그래도, 나는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스러운 자연..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