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 신부님 장례강론

2009. 6. 18. 오전 11:31:39

글자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존경하여 마지않던 고 윤형중 마태오 신부님과 마지막 하직 인사를 나누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고별 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요 사회적으로도 널리,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던 윤 신부님이 남기신 그 업적을 우리는 이 시간에 다 기릴 수 없습니다.

해박한 신학 지식으로 가톨릭을 대변


신부님은 말씀과 글로써 평생을 복음 전파에 몸 바치신 분이었습니다.
이 땅의 복음 선교는 평생을 두고 신부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간절한
뜻이었습니다. 그만큼 열정과 사랑으로써 이 겨레의 복음화,
이 민족의 구원에 당신 전부를 바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분을 가리켜 명강론가라고도 할 수 있고 탁월한 교리 교사,
한국에 있어서의 가톨릭 사상의 선구자,
한국 교회의 정신적 대변인, 진리의 증거자,
정의의 투사 등 여러 가지 말씀으로써 찬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얼마나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하셨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아름다운 찬사도 이분에 대해서 다 말한 것이
못 됩니다.
이렇듯 신부님은 임종이 가까워 오는 마지막 병상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교에 늘 큰 관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신부님의 병상 머리맡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에서
 얻은 확신입니다.
언젠가 전국 방방곡곡에 예배당이 많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신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야, 누구를 통해서든지 예수님의 복음 말씀이
 전파되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윤형중 신부님은 가톨릭을 수호하고 변론하는 데는 추호의
양보도 없으실 만큼 철두철미한 가톨릭이시고
또 해박한 신학 지식을 펴시고 또 정연한 이론을 전개하심으로써
 가톨릭을 반대하는 누구와도 두려움 없이 맞서실 만큼 가톨릭 정신이
 투철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제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가톨릭 보수라고도 할 수
있는 분이 윤 신부님이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이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그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결국 복음 선교에 있어서의 신부님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은 내게 앙화로다."라고
하신 사도 바오로의 열성,
바로 그것이 윤 신부님의 정신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참으로 한국의 사도 바오로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직접 신부님을 주교관에 모신 마지막 11년,
그중에서도 최근 수년은 모든 것에서 진정 해탈된 맑고 깨끗한 삶을
가지셨습니다.
이 기간에 신부님이 지니신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 겨레에 대한 사랑,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 한마디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신부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남을 위하고 남을 위해서 당신의 무엇을 조금이라도 주는
그런 청빈의 삶을 이어 오셨습니다.
신부님이 말년에 민주 회복 국민 회의에 참여하시고 한때
그 대변인이 되신 것도 어떤 정치적인 야심이라든지,
사회적 명성에 대한 욕망에서가 아니라 오직 이 나라와
이 겨레를 사랑하시면서 억눌리고 약한 자,
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라도 대신 되시겠다는 사랑에서였습니다.
이런 신부님의 정신은 그 유언에서 잘 드러납니다.

어두운 사회 속에 훨훨 타던 횃불


신부님은 당신 방의 가재 도구라야 별것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당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언에서 먼저 밝히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이 교구 경리국에 맡겨 놓으신 얼마되지 않는
 헌금 중에서 백만 원은 국제 사면위 한국 위원회에 보내 달라고
 하시고 나머지는 당신이 임종하실 때까지 돌보아 주신 분과
간호사에게 후하게 대접하고 또 혹시 남는 것이 있으면 당신을 위한
 미사 예물에 써 달라는 것입니다.
국제 사면위 한국 위원회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정의와
인권을 위해서 싸우다가 투옥된 분들의 사면과 또는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을 물심 양면으로 돕는 기구입니다.
신부님이 이 위원회에 당신이 남겨 놓으신 금전의 거의 대부분을
내놓으신 것은 오직 복음의 말씀대로 정의를 위해 일하다가
박해를 받는 이들의 고통을 형제적인 사랑으로 나누고 그 사랑에서
 이들을 돕겠다는 복음적 정신에서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이 땅에 없을 만큼, 이 나라,
이 사회가 의롭고 밝으며 약한 자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나라와 사회 되기를 비는 일념에서였다고 믿습니다.
그뿐 아니라 신부님은 이 유언에서도 당신의 병이 무거움을
 아시고 입원하시기를 사양하셨습니다.
 저는 물론 이뜻을 존중하면서도 그대로 해드리지 못하고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입원을 사양하신 이유는 역시 남을 생각해서였습니다. 당신 자신은 불치의 몸인 줄 이미 잘 아시고 그런 당신이 입원해서
병원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서
병원 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하시고자 하신 뜻에서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 때문에 남이 수고하는 것도 마음 괴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후 당신의 시신을 모신 곳에서는 누구도 밤샘을 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제가 따를 수 없다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이 같은 신부님의 배려,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시고 당신 자신을 뒤로 미루는 것은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복음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그 유서의 말씀 중 무엇보다도 감명 깊은 것은
 "내가 누구의 마음을 상해 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이니 용서해 주시고,
 내가 누구에게 용서해 줄 것이 꼭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하여 줍니다.
이제 나는 먼저 떠나갑니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이 짧은 말씀 속에 우리는 신부님의 마음에
그 복음적인 가난, 겸손, 그 사랑과 자비, 용서 그리고 하느님 손에
당신 생명과 모든 것을 내맡기는 믿음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정신에서 신부님은 당신 자신의 임종의 날을 평화 속에
고요히 맞이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에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고 서정호 선생의 장례날, 그리고 연이어 있은 우리 교구의 이계선,
이영일, 박일규 신부님 등 세 분 신부님의 장례날, 신부님은 병원
발코니에 나오셔서 당신도 곧 가실 그곳에 당신보다 먼저 떠나시게
 된 형제들을 전송이라도 하듯이 그분들의 발인을 묵묵히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신부님이 병상에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은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이 말씀은 임종하시기 바로 전날 저녁 병상에서
 당신을 둘러서 있는 분들에게 세 번이나 거듭하신 말씀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임종까지 더는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최후로 남긴 이 "고맙다"는 말씀은 그 방에 있는 분들에게
직접하신 말씀이겠지만 당신이 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뿐 아니라 삶 자체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으시고,
죽음까지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시는 데서 감사드리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신부님은 당신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마음으로부터 귀 기울이시며 고요히 기도 속에 병상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한때 이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자 훨훨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았던
윤 신부님은 모닥불처럼 고요히 사위어 갔습니다.
임종의 병상에서조차 청순하고 따뜻한 인정미를 풍기시면서
그렇게 자신을 고요히 태우셨습니다. 이제 이 모닥불은 꺼졌습니다.
실명(失明)한 이에게 광명의 빛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두 눈까지 바치셨듯이 남을 밝혀 주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 순간까지 남김없이 불태우고 사그러지듯 꺼졌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평생을 통해서 당신 삶 전부를 불태우신
그 사랑의 불꽃, 그 진리와 정의의 불꽃, 그 복음의 불꽃은
 많은 이의 가슴속에 계속 타오를 것을 믿어 마지않습니다.
주여! 가신 마태오 윤형중 신부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 1979. 6. 18. 명동 대성당

댓글 4

  • 2009년 6월 18일 오전 11:51

    참 부지런도 하십니다. 그러니 주님께 받은 탈란트가 많은가 봐요? 공동의 선을 위애 매진하십시요.

  • 2009년 6월 18일 오후 1:03

    와아~~루샤 언니 킹왕짱!!! 우리 교회의 보석 같은 분들이 마니 그립습니다.

  • 2009년 6월 18일 오후 2:09

    장례미사에 참례했기에 감회가 남다릅니다. 신부님께서는 제 삶의 곳곳에 함께하신 소중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 2009년 6월 19일 오전 1:46

    루시아는 어데서 이런 귀한 글을 찾아 올렸을까? 우리 안에도 그 불꽃들이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