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상아탑-이 향만 교수-

2011. 4. 11. 오전 4:38:39

글자
병든 상아탑

 

 

카이스트 한 휴학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학생과 부모님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공동의 도덕적 책임을 느낍니다.

경쟁만을 추구하는 학교는 더이상 인격을 함양하는 상아탑이 아닙니다.

경쟁하는 자에겐 자신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들도 학점 이야기엔 모두 긴장합니다.

절대평가를 해야할 과목이있고, 상대평가를 해야할 과목이 있고

이수만으로 평가해야할 과목이 있지만

학교는 모두 상대적인 평가만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인간학이나 영성같은 과목도 상대평가를 요구합니다.

더우기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조차 그렇게 요구할 때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상대평가엔 아무리 우수한 학생들이라도 낙오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무한 경쟁'이란 무식한 말이 있습니다.

경쟁이란 어떤 한 관점에서 경쟁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것을  전체적인 평가로 판단합니다.

또 학생이 모든 면에서 우월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는

생각없는 인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잘 할 수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를 잘하면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가 요구하고 빚어낸 잘못된 통념들 입니다.

한 총장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의 왜곡된 통념입니다.

오늘 학생들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해 보아야 하겠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적을 낼때마다 고민하게 됩니다.

성적은 부족하지만 이미 교과목이 요구하는 인성을 갖춘학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하고 말입니다. 

얼마전 무기력으로 자살을 시도한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약점도 장점이라 하였습니다.

부족한 점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이다 하였지요.

다시 우연히 만났을 때 얼굴이 밝아 한결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는 소통의 자리와 새로운 사회적인 평가를요구해야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인재를 뽑는데 최종합격자 성적이 비슷했습니다.

그러자 시험관이 수험생에게 백지 를 각각주고

종이에 일직선을 곧게 많이 그으라고 했습니다.

한 학생은 촘촘히 꾸준히 그렸습니다.

 다른 학생은 두세줄 그리다 낙서를 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누가 합격했을까요?

시험관은 나가버린 학생을 합격시켰습니다.

일같지 않은 일을 할 때 그것을 해결할 창의적 능력이 보였기 때문이지요.

우리사회가 어떤 인재를 추구하는지 학생들의 자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상아탑은 인생의 바다를 헤쳐갈 방법만을 가르쳐 줄 뿐입니다.

여기서 좌절하고 실망하지 않도록 자기 역할을 찾아나갈 교육 시스템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신문 타이틀 처럼 '잔혹한 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날 마련하세요.

 

이향만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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