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어리석음 / 김수환 추기경
프랑스의 여류 사상가 시몬느 베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질
투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은 왜 예수님처럼 온 세상
의 모든 이를 위해서 죽을 수 없는가 라고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의 십
자가 죽음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 모든 인간 하나하나를 사랑하고 온
세상 모든 이를 구하고자 사랑하신 그 사랑에서 가시게 된 어쩔 수 없는
길인 것 같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시 전능으로 단박에 구하실 수 있습니다. 인
간의 목덜미를 잡고 죄도 짓지 못하게 하고, 세상에서 천국으로 바로 끌
어올리듯 하려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사
를 무시한 강제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참된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무엇
보다도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결코 강요할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상대방에 있는 그대로 받
아들입니다. 상대방을 억제하지 않으며 그 자유를 존중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인간 하나하나에게 사랑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십
자가 죽음으로써 온 인류를, 공동체를 구하시는 데 결코 모든 인간을 도
매금으로 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구하신 것입니다.
또한 참사랑은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감옥에
가면 같이 가고, 죽으면 함께 죽고 싶어합니다. 하느님은 그 이상으로 인
간을 사랑하기에 인간의 처지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 편에
서 당신에게로 돌아서지도 않고 또 올라갈 수도 없을 때, 당신 편에서 인
간과 같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
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모든 사람을 그 죄와 함께 당신 안에 받아들이기 위
해 당신을 사랑으로 비우는 것, 그것이 당신을 무(無)로 만든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어느 날 반드시 이 십자가를 져
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겠다고 스스로 고통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
다. 주어진 여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형
제로 준 그 모든 이를 위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마음 다짐
을 하는 것,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십자가의 죽음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오늘의 세상에서 십자가
보다 더 크게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은 없습니다. 이 십자가의 예수
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까? 고통 속
에 신음하는 사람들, 슬피 울 수밖에 없을 만큼 버림받은 사람들, 가난하
고 약한 사람들, 병자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어리석음의 길은 사랑의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자신을 불태우면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요 빛입니다.
댓글 1
윤
😊2005년 3월 31일 오전 8:35
앞으로 과목을 누르면 배움의 보고가 차곡 차곡 쌓여 있을 것을 생각하닌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