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성데레사 수녀님의 겸손도 함께 읽으시기를...
1. 이야기가 많이 빗나갔습니다마는, 여태 말한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알아듣는 이는 나를 과히 허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는 우리가 서로 가지고 싶어하는 사랑으로 되돌아갑시다.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순수 영신적인 것으로서 정말 내가 이것을 알아듣기나 하는지 나도 모르겠고, 이러한 사랑을 가지는 이가 그리 많지도 않으니 많이 말할 것도 없을 성싶습니다.
주님께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면 깊이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는 완덕에 높이 올라간 표가 되니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이 사랑을 들어서 약간이나마 다루어볼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혹시 얻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누구든지 제 눈앞에 덕을 보노라면 마음이 그리로 쏠려서 얻고 싶어지고, 또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주께서 나를 도우시어 이 사랑을 알아듣게 하시고, 더욱이 이를 들어 말할줄 알게 하소서. 사실 나는 아무래도 영신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이것이 감각적인 사랑과 뒤섞이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이에 대한 말하게 되는지 그것조차 모르겠습니다. 마치 먼 데서 하는 이야기 소리를ㅡ듣기는 하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이 하는 말을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마는 잘 말하라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혹시 어느 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 한 가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의 됨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3. 내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느 영혼에게 이 세상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똑똑히 알게 해주시고, 그리고 그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어 이승과 저승, 영원한 저 세상과 꿈결 같은 이 세상의 차이를 알게 해주시고, 또 창조주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며,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으로ㅡ 이것은 단순한 인식이나 신앙이 아님ㅡ밝히 터득하게 하실 때, 혹은 창조주를 사랑할 때 무엇을 얻고 피조물을 사랑할 때 무엇을 잃는지, 창조주는 누구시며 피조물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실 때, 그 외에도 기도중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영혼, 혹은 당신이 원하시는 영혼에게 당신께서 친히 가르쳐서 허다한 진리를 밝혀주실 때, 그러한 영혼은 아직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영혼보다 훨씬 더 다르게 사랑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4. 자매들이여, 혹시 여러분은 내가 한 말이 긴치 않다, 그런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발 그리되기를 나는 주께 빕니다. 알 만큼 다 알고 마음속에 새겨두시기를 빕니다. 정말로 안다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니, 주께서 여기까지 도달하게 만드신 영혼은 이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경지에 도달케 하신 사람들은 그 영혼이 너그럽고 왕자연하여서 우리 육체와 같이 하잘것없는 것은 제아무리 아름답고 제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그 사랑으로는 마음이 차지 않습니다. 물론 보아서 즐겁기는 하지마는, 그것을 내신 주님을 찬미하는 것뿐이지 거기에 주저앉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저앉는다’란, 그런 사물에 사랑을 준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만 순수한 사랑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그런 따위를 사랑하느 것이 실상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림자를 사랑하려고 덤비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 없을 것이고, 그런 것을 사랑한다고 주님께 아뢰기에는 너무나도 창피해서 못 견딜 것입니다.
5. 아마도 여러분은 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갚을 줄도 모를 것이라고. 그러나 아닙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니까 남한테 사랑을 받는 것이 우선은 기쁘겠지만, 이내 자기로 돌아와서는 그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기도나 가르침으로 자기 영혼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영혼에 도움은커녕 해만 돌아오는 호의라면, 어느 것도 짐스럽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호의를 베푸는 이들에게 감사를 안 한다든지 그들을 위하여 주님께 빌어 줌으로써 은혜 갚기를 저버린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네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 원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는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것도 없음에도 사람들이 자기네를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자기네를 사랑하기 때문이요, 따라서 사랑은 결국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사랑을 갚는 것도 주님께 맡겨버리고, 그러한 뜻으로 주께 빌면 그 이상은 마치 자기네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듯이 자유로울 따름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깊이 헤아려보고 나서 나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완전한 선으로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들 말고 딴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욕구야말로 그 얼마나 심한 몽매함인가 하고 말입니다.
6. 이제 알아둘 일은, 우리가 남한테서 받고 싶어하는 사랑이란 항상 우리의 잇속이나 만족을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들은 세상이 줄 수 있는 행복이나 쾌락을 모두 다 짓밟아버립니다. 그들이 혹시 만족을 찾는다치면, 하느님 이외의 것, 하느님에 관한 것 이외에는 다른 만족을 느낄 수 없으니 남한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7. 한번 이 진리를 깨치고 나면, 남이 내 마음을 알아준다, 못알아준다 하면서 애태우던 일이 우습게 생각될 것입니다. 좋은 사랑이라도 갚음을 바라는 것이 우리의 심정입니다마는, 갚음을 받은 사랑은 한낱 지푸라기요, 바람결 같은 것이요, 바람에 쓸려가는 가볍디 가벼운 것…. 그러므로 많은 사랑을 받았대서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말한 그 사람들은 영혼의 이익을 위한 사랑이 아니면—그들은 사랑 없이는 이내 지쳐버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남한테 사랑을 받든 아니 받든 도무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진정한 사랑, 더없이 정깊은 사랑, 더없이 잇속있는 사랑을 훨씬 더 많이—한마디로 사랑만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받기보다 주기에 열중하고, 그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나는 감히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라 불리울 수 있고, 다른 하찮은 애정들은 그 이름만을 함부로 따다가 쓰는 것이라고.
8. 또 여러분은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무엇에다가 정을 주느냐고. 그렇습니다. 그들도 보는 것을 사랑하고 듣는 것에 정을 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것이란 ‘늘 있는 그것’입니다. 그들이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눈은 즉시 육체를 거쳐 영혼에로 돌려지고, 동시에 사랑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파기만 하면 그 광에서 금이 나올 싹수나 기미가 보일 때는 사랑하는 수고도 달갑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혼을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다만, 그 영혼이 좋은 것을 지니지 않고 주님을 많이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입니다.
나는 방금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사 그 영혼이 본성의 매력을 다 갖추고 있고, 좋은 일이면 다 해주고, 죽기까지 하면서 사랑을 요구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고, 더구나 오래도록 정을 붙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해서 알고 있는만큼, 주사위의 속임수에 넘어갈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벌써 상대방과 맞지 않으며, 그러기에 서로가 오래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상대방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을 적에는 목숨과 함께 사랑은 끝나고말며,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서로 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9. 주께서 참다운 예지를 내려주신 영혼은 이승에서만 존속하는 사랑을 그 가치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을 뿐더러, 그 가치조차도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의 쾌락이나 명예나 부귀를 누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락과 심심풀이할 여유가 있을 때에는 그런 사랑이 소용될는지도 모르겠지마는, 그까짓 것은 이미 다 버린 지 오래인 사람한테는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혹시 누구를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영혼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애정인 것이니, 그 외의 다른 사랑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애정은 매우 힘드는 것으로서 남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하고, 사소한 선을 위하여서도 천의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아, 고귀한 사랑! 사랑의 임금이시며 우리의 행복이신 예수님을 본뜨려 하는 그 사랑이여!
제 7 장
1. 이상하게도 이 사랑은 무섭게 강렬합니다. 얼마나한 눈물, 얼마나한 고행, 얼마나한 기도가 있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주대전에 힘이 있다 싶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기가 사랑하는 영혼을 위하여 빌어달라고 얼마나 정성 지극하게 간청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영혼이 진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도무지 편할 수 없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 영혼이 훨씬 나아졌다가 조금이라도 뒷걸음질치는 듯이 보이기만 하면, 그는 살맛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먹거나 자거나 오직 그 걱정뿐이고, 자기가 그토록 아끼는 영혼이 죽지나 않을까, 두 영혼은 영원히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항상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승에서 죽는 것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는 그이기 때문에, 그는 한번 불기만 하면 움켜잡을 수도 없이 날아가버리는 그런 것에 정을 붙이지 않습니다.
내가 말한 이 사랑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라고는 더도 덜도 없이 바라고, 고이는 모든 것이 오직 사랑하는 영혼이 천상의 행복을 실컷 누리는 것을 보자는 것뿐입니다. 참다운 사랑이야말로 바로 이것이고 이승의 한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나쁜 사랑에 대해서는 아예 말하고 싶지 않으니, 주께서 우리들을 그런 사랑에서 구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 지옥과 같은 사랑, 그것이 얼마나 나쁘다는 것을 말하느라고 우리 자신이 피로해야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의 가장 작은 해를 아무리 강조한대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자매들이여! 그런 사랑은 이름만이라도 우리 입술에 올라서는 안 되고, 세상에 그러한 것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농담이건 진담이건 여러분 앞에서 그런 사랑을 이야기 하는 사람, 서로 말을 주고받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 것이며, 듣는 것조차 해로울 따름이지 하나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사랑이 올바른 경우는 다만 우리끼리의 사랑, 그리고 일가친척과 벗들에 대한 사랑뿐입니다. 이 사랑은 그들이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머리를 앓으면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그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못 견뎌하고…, 모든 게 이렇습니다.
3. 그러나 참다운 사랑은 이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우, 물론 우리의 본성은 약해서 우선 마음이 아프겠지만 즉시 이성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자의 영혼에 좋은가, 그가 닦는 덕에 보탬이 되는 일인가, 그가 어떻게 참고 있는가 하고…. 그리고 그가 인내를 가지고 고생 중에도 공을 이루도록 주님께 비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참을성이 있다는 것을 보면 걱정을 하기에 앞서 오히려 기뻐하고 스스로 위로를 삼으며, 자기가 참아서 얻을 수 있는 공을 상대방에게 다 줄 수 만 있다면 상대방이 견디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보다는 자기가 도맡아서 견디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마음이 언짢거나 어지럽지 않은 것입니다.
4. 거듭 말합니다마는, 이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신 살뜰한 님, 예수님의 사랑을 본뜨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진 이들은 좋을 일을 많이 하고 어려운 일은 자신이 다 떠안으면서도 남들은 고생할 것 없이 은혜만 받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과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얻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편애가 있었다면 끊어버리게 마련일 것이고, 혹은 그 옛날의 모니카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그러하였듯이 그 벗과 함께 같은 고향길을 가다가 우리 주님을 뵈옵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두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다루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길에서 빗나간다든지 무슨 잘못이 있으면 즉시 말해주고,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겨내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고치지 않을 적에는 그 비위를 맞추려거나 모르는 체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잘못을 차마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상대방은 잘못을 아주 고치거나, 아니면 친분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두 가지를 두고 지구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충실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남이 주님을 잘 섬기는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따지지 않습니다.그러나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 뿐더러 무엇이거나 환히 들여다보고 있고, 먼지 하나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육중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셈입니다.
5.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한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마는 주께서 차츰 완전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랑을 얻는 방법부터 시작해봅시다. 처음에는 약간 본성적인 인정이 섞여 있어도 그다지 해로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수녀들이 고생을 하고 병을 앓을 경우, 그것이 대단치는 않다 하더라도 인정을 드러내고 동정하는 것이 좋고 때로는 필요하기도 합니다. 남이 큰 고생을 할 때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못견디게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가 하면, 사소한 일로 꽁하는 성질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성질을 가지지 않았으면 그런 사람들을 동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주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여주시는 대신에 딴 고생을 여러분에게 주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고생이 무겁게 느껴질지라도 딴 사람에게는 가벼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우리대로 판단하지 맙시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어 아무 어려움이 없는 때의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약할 때를 생각합시다.
6. 내가 일러두는 이 말은, 남의 고생을 동정할 줄 알기 위하여 중요한 것입니다. 설사 그 고생이 대수롭지 않은 경우라도 말입니다. 특히 내가 말한 영혼들은 고생을 사서 하려 들고 어떠한 고생도 달갑게 여기는만큼, 자기가 약하던 때를 돌아다보고 조심하는 것이 썩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가 잘해서 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이런 틈을 타서 조금씩 조금씩 이웃사랑을 식게 하고, 나아가서는 결함을 완덕으로 잘못 알게 할 것이니 말입니다.
항상 조심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마는 자지 않기 때문에 완덕을 더 높이 닦는 사람일수록 더욱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악마는 한층 더 능청스럽게 꾀는 것이니 조심하지 않다가는 선을 가장하는 그의 꾀에 넘어가고, 해를 입었을 때는 이미 늦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항상 깨어 기도해야 됩니다. 악마의 음모를 밝혀내고 그 가면을 벗겨내는 데에는 기도가 최상의 방법인 것입니다.
7. 여러분 중에 누가 휴식이 필요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정한 시간을 자매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신중히 행동만 하면 그것이 다 완전한 애덕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이 아쉬워할 때 서로 동정하는 것이 매우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분별 없이 함으로써 순명을 거스르는 일이 있을까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원장의 명령이 마음속으로 매정하게 느껴지는 때에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원장에게 겸손되게 말하는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들 때문에 마음이 아파야 하고 마음을 써야 할 일을 잘 알아두십시오. 아주 드러난 잘못을 자매에게서 발견하거든 언제나 크게 아파해야 됩니다. 남의 잘못에 놀라지 않고 그것을 참아줄 줄 아는 데서 참다운 사랑이 드러나고 실천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남들도 그들의 잘못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를 , 여러분이 모르면서 지니고 있을 여러분의 잘못에 대해서 그와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못하는 자매를 위하여 주님께 많이 빌어주고, 그에게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그의 잘못과 정반대되는 덕을 그가 완전히 닦도록 힘쓰십시오. 이렇듯 실천으로 그를 가르치기에 힘써야지 말로 해서는 알아듣지 못하고, 벌을 준대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 안에서 빛나는 덕을 보고, 자기도 해보려고 하느 편이 훨씬 더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이 좋은 지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8. 남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안혹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수녀의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하고 참다운 사랑입니까? 그런 수녀는 갖가지 덕에 잘 나아갈 것이고 회칙도 완전히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의 우정은 말로 표한할 수 있는 어떤 본성적 애정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표현은 이 집에서 쓰지도 않고 써서도 안 되겠지만, 서로 상대방을 부르면서 “내 생명”, “내 사랑”, “내 행복!”이니 하는 그런 등속입니다.
그런 정다운 표현일랑 두었다가 ‘님’을 위하여 써야 됩니다. ‘님’과 함께 단둘이만 있어야 그런 말을 쓸 수 있고 엄위하신 님께서도 들어주시지, 좀스러운 계집이 되거나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이 수녀답게 일을 하게 되면, 주께서는 여러분을 남자들도 놀랄 정도로 용감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조차 우리를 창조하셨거늘 그만한 일이 하느님께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예수의 성데레사 수녀의 '완덕의 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