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나를 깨우는 시간은 아침 5시 40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도 아직 눈이 안떠진다.
새아침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화두를 성호경으로 밀어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고 나 율리아나와 함께...아멘.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성심안에 잠기어 봉헌의 기도를 바친다.
냉수 한 잔 마시고 두툼한 양말에 등산화를 챙겨신고 내려다 본 아파트 마당은
비에 젖어있었다.
창문열고 손을 내밀어보니 어쩌다 한 방울...
신발 신은게 아까워서 방수조끼를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1단짜리 묵주를 들고
전능하신 천주성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
의례껏 고통의 신비부터 묵상하게 되는건 왠지 모르겠다.
어디서나 걷기 시작하면 자동으로 외워지는 묵주의 기도가 시작된다.
산에는 나뭇잎이 소리도 요란하게 빗방울을 맞으며 우산이 되어준다.
비오는 날의 숲속은 지나치는 사람도 드물어 또 다른 느낌으로 좋다.
정상에 오르니 나이드신 어르신이 말을 건넨다.
'이렇게 이쁜꽃 봤어요?'
장미 한 송이가 처절한 붉은 빛으로 홀로 피어있었다.
그 산 꼭대기 감투봉 운동기구 옆에.
사람이 꽃보다 곱다는데...하시는 그 어르신의 말도 여운으로 남는다.
가까이 가서 봐야지...
꽃잎 하나도 흠없는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봉오리도 지나, 잎을 벌려 피어나는 싱싱한 젊음도 지나,
이제 더는 피워낼 꽃이 없는 그 장미는
조금씩 시들고 떨어질 일을 해내야함을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빗방울을 머금고 마지막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양 힘겹게 피어있었다.
그 처절함이 무거워보여 고개를 기울여 물방울을 떨구어 주었다.
카메라를 가져올걸...
내일은 네가 오늘과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텐데...
낮에 시간이 되면 너를 보러 한번 더 올라올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장미를 뒤로 했다.
다시 걷기 시작하며 이제는 환희의 신비...
아~ 그러자.
이제부터는 주님의 기도를 일본어로 바쳐보자.
주님의 기도가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는 성모송도 영광송도 사도신경도...
거의 다 내려와
마리로사와 아네스가 텃밭이 생겼다고 흙을 뒤집으며 좋아라 하던곳을 지난다.
지나치다보면 가꾸지 않아도 그들이 뿌린 씨가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상추도 고추도 또 뭔지 모를 잎들이 되어 자라고 있다.
성경 말씀이 머리 속으로 지나간다.
묵상도 하기 전에 멀리 움직임이 느껴져 바라다보니
산토끼가 풀을 뜯고 있네...
잿빛 날씨에 회색 산토끼는 자세히 보니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경계하면서 아침을 들고있었다.
더 보고 싶었지만
토끼야...겁내지 말고 천천히 맛있게 먹어...
또 뒤돌아 섰다.
장미도 토끼도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며 오늘을 시작한다.
언뜻
그 장미의 나이는 지고마는 일만 남아있음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 율리아나처럼
하느님안에서 고은 주름의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가꾸어 나가는 육십 한살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