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류시화-
수레를 타고 가는 신부
옷자락을 잡아당겼지
풀어지는 사랑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로 가서
신부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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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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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치고 -류시화-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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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속을 걷다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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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류시화-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고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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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 자의 노래 -류시화-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다른 그 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나는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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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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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사이 -류시화-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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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 언덕 -류시화-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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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꽃 -류시화-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따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밝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에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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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시 화 -
♣1957년 출생. 경희 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0~1982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1983~19990 작품활동 중단.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
이 기간동안 명상서적 번역작업을 하다. <성자가 된 청소부>
<장자, 도를 말하다> <성자가 되기를 거부한 수도승> <새들의 회의>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서적 40여권 번역.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1989년 두 차례에 걸친 인도여행. 라즈니쉬 명상센터 생활
♣1988~1991년 가타 명상센터 생활
♣1991년 명상 구도 에세이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푸른숲 刊)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티벳 사자의 서>등의 여러 명상 서적도 높이 평가받음.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과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류시화 시 모음
2007. 3. 3. 오후 2: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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