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교리서》 제2부 : 그리스도교 신앙고백
신경=세례 때 신앙고백 -절(節=대나무 마디처럼)- 성부 / 성자 / 성령으로 크게 3절
사도신경=로마교회
니케아신경(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신경)=325, 381 공의회의 신경=동방교회+서방교회
(퀴쿰퀘=아타나시오신경, 톨레도-라테라노-리옹-트리엔트 공의회 및 교황들의 신앙고백들)
믿음의 신표(信標, 信符)=파경(破鏡)이나 파검(破劍) 등=도장, 묵상, 보호, 보물(*표준 가르침)
제1장 : 천주 성부를 믿나이다.
제1절 :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5강 : 홍승수 교수님 주제 : ‘믿나이다’...? <‘사실’에서 ‘진실’로, ‘진실’에서 ‘진실 너머 진실’로>
정약용: 유한 차원 존재들이 사실 집을 지어봐야, 진실로 허무 그 자체지만, 그래도 남는 진실은 자기증여(자기비움)
* 6강 : 오늘 주제 : ‘천주 성부 =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 = 신(神)’......? <교회의 ‘정통’ 이해>
‘창조하심(성부)’ 이해는 주로 ‘아름다움-충만-안도’로, ‘구원하심(성자)’ 이해는 주로 ‘죄-고통, 궁핍-실패, 고독’으로.
제1단락 : 천주(하느님)를 믿나이다
-가장 근본(Α=최초 근원, Ω=최종 목적)이시며, 신앙의 신비로 머무신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라고 ‘니케아 신경’은 시작. (*유일한 주님=예수님=크리스트교)
-‘마음, 목숨, 정신, 힘’(=이해 방식)을 다하여, 믿고 사랑해야 할 존재(*자유, 사랑의 위대한 빛을 위하여)
‘하느님’만이 ‘있다’. 유일성-단일성, 초월성, 내재성. (‘하늘-주재자’로, 公正한 神) *인간 ‘이해’를 넘어서 있다.
* 뭇 신령에 깊이 물든 세상 : 신은 여럿 있다 -다신론(多神論).
다신론은, 역사적으로 보면, ‘밥(地)-애정(豊)-권력(國)’으로, 私有하는, 곧 개인화하는 신(=物神=邪神)
* 기계론적(유물론적,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지성)에 깊이 물든 세상 : 신은 없다 -무신론(無神論).
‘물질’ 만이 입증할 수 있는 현실이다. (=물질만이 있다.)
'창조'신앙(논증)=모든 사물에 선험적으로 내재하는 ‘객관적 정신’이, 곧 주관적 정신의 모상이고 표현.
물질(객관적)은 존재하나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하니, 정신(주관적)이 자신을 의식하고 이해하는 존재.
‘생각됨’이 ‘생각함’ 없이는 가능하지 않으니, 그 분께서만이 (충만하고 완전한) ‘자신의 존재 자체’이다.
현실은 ‘유일한 의식의 구현’이라기보다, ‘인식되는 (불가추측한) 하나의 창조적 자유, 창조적 정신’이다.
*크리스찬은 한 인간에서도 개체 아닌 위격을 본다. 실존재=최소로서 최대, 일회적이고 되돌릴 수 없다.
단순한 ‘물질’과는 반대되는 ‘말씀’의 수위성'. 초기 교회는 ‘신화에 역행하는 말씀(logos)’을 선택.
‘진리라 일컬었지, 인습(*시대정신)이라 일컫지 않았다’ (*logos=보편적인 법칙+행위의 준칙=분별과 이성)
‘존재의 진리’를 ‘아름다운 관습’ 또는 ‘사유(자기 해석) 그 자체’로 보는 (유한한) 경향들에서 넘어섬.
당신 ‘이름’을 계시하신다 -점진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을 통하여... : 근본적인 계시는 2가지.
-탈출기3 ‘모세의 불타는 가시덤불’(神체험)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살아 계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다> (*생명 그 자체).
1)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다.’ (=El, 이스라-엘)
‘어느 곳’의 신이 아닌, ‘사람들, 나와 너’의 신=내재성(자애와 진실로, 스스로 다가오시는 약속의 신)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 (인간을 믿고 용서하시는 하느님. ‘계시’는 곧 약속=구원 ‘경륜이자 업적’)
2) YHWH= I am I =‘나는 있는 나다’ 또는 ‘나는 나다’ (*이름이기도 하며, 이름이 아니기도 함)
(생성되는 모든 것의) ‘존재 그 자체’ =초월성(자기를 숨기시는 권능의 신, 진실의 신)
-거룩하신 하느님이므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그냥 ‘주님’=이름을 다시 신비로 돌린다.
-요한17.6 ‘예수가 불타는 가시덤불’(神체험)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있는 분’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사랑이시다> (*사랑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된다.)
3) ‘예수 그리스도’ 이제, 참으로 불릴 수 있는 분. =초월성(권능, 약속)+내재성(위격, 친근, 자기 증여)
*이름= 관계를 맺게 해주는 본질, 인격의 신원(身元), 그 생명의 의미를 표현한다.
*성리학의 ‘이름’(名-正名) : 나-인간공동체-자연-우주에 대한 ‘誠,敬->實事求是’를 통해 ‘도달한 바, 궁극의 목표’
믿고 사랑하면, 우리 삶 전체에 그 결과를 가져온다.
그 분(*위격=하느님 안에 있는 인격)을 신뢰함으로써, 모든 것에 감사하고, 믿고 신용하게 됨.
“가장 위대한 것에 담기지 않으면서, 가장 작은 것에 담기는 것이, 곧 신적인 것이다”
“이 세상의 더할 수 없이 높은(至上) 현실은 우주적 필연성이 아니라 자유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단일성과 존엄성을 알게 됨.
크리스찬은 한 인간에서도 개체 아닌 위격을 본다. 실존재=최소로서 최대, 일회적이고 되돌릴 수 없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을 선용하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을 멀리 하게 함. =믿고, 끊어버림.
<이 세상의 사람들이, (무형한 영적 존재인) ‘하느님’을 믿고 사랑함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서, 창조 사업의 절정에 해당하므로, 인간만이 가능하다.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로 창조 - 인간 존재(물적인 유형 + 영적인 무형)의 세계
흙 + 생명의 숨. 영혼=인간의 영적 근원이다.
‘인간 전체’가 성령의 성전이 된다.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은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생각할 만큼 심오하다.
각 사람의 영혼은, 부모들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다.
영혼은 불멸이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할 것이다.
영혼(soul) - 은총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음.
육체에 부여되어 창조되는, 개성을 가진 영체를 의미=토마스 아퀴나스. 生혼-覺혼-靈혼 3魂설=플라톤.
영(spirit) - 초자연적 목표를 향함.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초자연적-정신적인 것을 의미' (바오로 :초자연적=심령 자연적=영혼 육체)
마음(mind) - 존재의 심연. 무엇을 ‘섬김’과 관계된다.
인간의 중심 또는 인간 전체. 보통 ‘정신 활동’으로 이해. (*신랑을 위해 준비해 두는 방 하나..)
<조선 초기교회 선조들의 하느님 이해는?> 한역 교리서 뿐 아니라 한역 성경까지 넒게 이해.
창조주 하느님으로 = 주재자-초월성 <권일신, 권철신>
흠숭 주재자-사람의 영혼(3혼설)-자연의 근본원소=엘레멘탈(4행설)
=영-진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 드림이 진실한 예배라는 말씀에 잘 대응.
"이 세상 주재자를 흠숭해야 한다는 설, 식물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는 영(靈魂-spirit)이 있다는 설, 자연은 4 근본원소(精靈, 엘레멘탈)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은 진실로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욕할 수 없습니다."(欽崇主宰之說, 生覺靈三魂之說, 火氣水土四行之說 誠有至理 不可誣者). -권일신이 보낸 편지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요한4. 23
우리에게 스스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으로 = 친밀함 -내재성 <정약용, 정약종>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할 바른 길로 다가오시는 분으로 = 바른 길(正道) -내재성 <최필공>
“상제는 감응하고 접하고 내려다보며 인도하며 또한 말합니다(上帝[=靈明主宰之天]...感格臨照而言之)”-정약용
"하늘을 보고 죽는 것이 땅을 보고 죽는 것보다 좋다" -정약종
"천주학은 유식한 선비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평민들도 조금 지각 있는 사람은 역시 당연히 하는 것이다"-최필공
"그 분이 하느님께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9. 33.
성자 하느님을 통하여 성부 하느님으로 = 크리스챤(임마누엘)-은총 <이 누갈다>
“주님의 자녀 되어 의인이 되고, 하늘의 성인의 벗이 되는 것은 은총” -이 누갈다의 《옥중서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28. 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