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발표문-김도미딜라님

2006. 9. 6. 오후 8:54:14

글자

2005년 3월 13일 피정 -김부영(도미딜라) 자매님의 체험발표문 제 1 장 
<<참제자 피정시 체험 발표하였던 글이므로 절대로 다른 용도로 사용을 금합니다.>>

 

준비하는 회장님들 (젊은 오빠들?) 께.

안녕하세요?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습니다.
일주일을 준비하면서 참 많이 힘들었지만 참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저를 많이 위로해 주셨기 때문에 그래도 위안이 되었답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저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회장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꼭 기쁨과 슬픔 같이 나누고 싶지만 특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의 묵주의 기도의 효험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주는 너무도 좋은 기도랍니다.
제가 항상 기도할 수 있도록 저에게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을 주시면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항상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힘을 받을 수 있는 이 모임이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최창주 회장님께서 부탁하셨던 저의 마지막 기도를 메일로 보내드리려다 보니까 이렇게 답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다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서 준비하셨던 회장님들께 제가 보고한 자료의 내용을 보내드리고 싶어 졌답니다.
예쁘게 보아주시고 저에게도 많은 기도 부탁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제1장 서론

 

안녕하십니까?
저는 구로본동에 사는 빈첸시오 회원 김부형 도미딜라입니다.

일주일전에 구신부님으로 부터 '행복한 삶'이라는 주제로 체험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많이 부족한 제가 어떻게 지난날들을 여러분들 앞에서 고백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예'라고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을 정말 많이 걱정하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참 행복했던 것은 동안에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동안 긴 세월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제 머리속에 기억되고 있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주신 복음 묵상은 마태오복음 5장 3절에서 12절에 나오는 참된 행복
시편1편에 나오는 복된사람이었습니다

마태5.3-12 참된 행복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 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시편1.1- 5절에 말씀은

1.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걸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2.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 낮으로
그 법을 되 새기는 사람.

3.
그 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아서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4.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까불리는 벼와도 같아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도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5.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


마태복음5.1-12과 시편1편에서의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나눔을 통해 하느님나라를 허락하셨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정의로운 마음을 허락하시어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하느님나라를 허락하셨습니다.

진정한 나눔과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그 날이
진정한 하느님의 나라로 완성되는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편1편에서의 말씀도
죄인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법을 낙으로 삼아 밤 낮을
그 법으로 새기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행복에 대한 두 복음을 읽으면서 내 자신의 삶을 되 돌아
볼 수 있는 모처럼의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를 되돌아 보면서 너무도 기뻤던 것은 제가
정말 힘들고 외로웠을 때에는 꼭'하느님을 찾았고 하느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셔 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했습니다.

 


2장 시련

 

저는 이십대를 막 넘어서는 시기에 눈이 실명될수 도 있다는 포도막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은 그 병이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 채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낮은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 시나리에 나오는 안요한 목사의 실명기를 보고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십대를 고통으로 맞이하게 되었고 힘들게 살아야만 했던 그 시절이
지금은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은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손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없는 삶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그리고 끊임없이 앞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때때로 나에게 '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는 슬픔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리에 떠오르는 고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나이에 가장 큰 아픔을 안고 살았던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골방에 갇혀서 몇 달 동안을 나오지 못한 채 지내면서 결심은 바로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세례는 받았지만 믿음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성서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는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루까 8.47에서 12년동안 하혈하던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러면 딸이 살아날 것이다"
루까 8.50에서도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매번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꼭 믿음을 요구하셨던 것은 제가 하느님을 만나야만 했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서를 보기 시작했고 말씀을 통해 저는 믿음을 갖기 위해 하느님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미사에 참여했고 하느님을 체험하기 위해 성령세미나도 여러 번 받았으며, 산기도와 철야기도 그리고 금식기도 내가 할 수 있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개신교에 다니는 언니를 통해서도 부흥회나 기도원에도 서슴치 않고 모든 곳에 다 참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신앙의 체험을 할수 가 있었습니다.

나에게 다가온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을 알게 해주신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소심하고 마음이 나약한 저는 사람들 앞에 서기를 많이 두려워했었고 활동도 전혀 할 수 없었으며 거의 집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습니다.
용기가 부족해서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저에게 기도할 수 있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로마서8.26에서 말씀하신 것처럼'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위해 도와 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는 다 할 수 없을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의 은혜를 받았고 소심한 제가 엄마들의 레지오인 사도의 모후에 입단을 해서 많은 환자들을 방문하는 기도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드리는 묵주의 기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가 되었답니다.
특히 환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기 위해 할수 있었던 묵주의 기도는 제가 9일기도의 기도문를 다 외울정도로 저는 묵주의 기도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파하는 이웃을 보면 같이 54일 기도를 묵상하면서 하느님께 힘을 받곤 했습니다.

묵주의 기도는 성모님의 겸손과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복음 전체를 묵상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나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한참을 힘들지만 열심히 살고 있었던 이십대 후반이 되자 나는 평생을 잊을수 없는 오주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고버2.17절의 말씀에서 행동 없는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저에게 또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일 때까지만이라도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오주교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본당에 유일한 2차 헌금인 '사랑의 헌금'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할수 있는 빈첸시오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는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에서의 말씀을 따라 구체적인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빈첸시오회가 저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같이 나누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오주교님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하느님의 진정한 사도이셨습니다.
오주교님과의 4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너무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은헤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을 만났고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빈첸시오회에 들어온지도 2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벌써 오십을 넘었지만 그 시절를 생각하며 아름답게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잊지못할 많은 가난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렇지만 우리를 위해 하늘나라에서 기도하고 있을 믿음의 친구들이 있어서 저는 지금도 행복하답니다.

뇌성마비소녀에게 한글을 익히게 하고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했던 개신교 권사님의 딸이었던 은희안젤라는 우리에게 13년만의 외출을 허락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6학년의 어린 나이에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대성시몬!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았던 야고버는 서울에 있는 간호사가 다 일일 봉사를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난해서 심장판막수술을 할 수 가 없었던 젊은 청년 유스티노를 위해 불란서의 외국 사제는 성모병원에서 머리를 숙여 가면서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그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삼십대는 힘들지만 가난한 이웃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어 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연상케 하는 오주교님은 활동을 통해 부족한 우리들에게 너무도 많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제이신 구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참 어두운 시절이었고 많은 젊은이들은 정의를 외치며 우리 교회안에 들어왔던 기억이 납니다.
야학을 하는 젊은 청년들은 청소년 분과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희망찬 내일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친구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87년도에 구로구청 사건은 저에게도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옳은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젊은이들을 보면서 저도 많은 고민에 빠졌던 기억도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 들에게서 나오는 세상에 대한 빛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 말씀이 나에게 많이 다가왔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들 중에 하나는 사제가 되었고 한 야학교사는 우리 빈첸시안이었던 노동하는 친구와 결혼을 해서 샌프란치스꼬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대를 같이 더불어 살아온 많은 우리의 가난한 이웃이 있어서 저는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3장 제게 주신 특별한 은사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하느님의 은총 중에 하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는 항상 가난한 이웃을 먼저 알아보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더 많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할 줄 아는 지헤를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 안에서도 더 많이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이웃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충분히 이루어 나갈수 있는 작은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소외된 가장 가난한 이웃을 통해 하느님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또 다른 많은 이웃들에게도 하느님나라에 동참할 수 있는 너무도 좋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으로 행복한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활동이 때로는 생명을 구하게 되었고..

때로는
이혼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했고

때로는
부모님들 조차도 다룰수 없었던 꼬마친구의 눈에도 우리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던가 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가난한 이웃들 안에서 사랑의 나눔을 할 수 있어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신장이 다 망가져서 더 이상은 살아갈 수 없다는 한 고아 출신의 가장을 만났던 그 때에도 저는 평생에 잊지못할 많은 아름다운 이웃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최초로 강남성모병원에 사회사업가를 통해 신장이식수술이 이루어진 것도 ..추기경님의 추천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신장을 제공했던 우리의 친구 신요셉 !

그리고 수술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에 반해버린 윤영석 교수!

30년을 가토릭에 몸담아 왔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던 윤교수님도 우리들의 활동을 통해
집안 식구들이 다 영세를 받아 우리들을 감동케 해주었답니다.

이렇게 저는 가난한 이웃을 만나 하루 하루를 너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잘 배웠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은 나를 당신에 도구로 쓰시는데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슬픈 젊은 날의 나의 고통은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충분히 고민하도록 나를 이끌어준 하느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내가 앞을 못볼 수도 있다는 육적인 고통을 통해 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아니 더 크게 말하자면 영적인 눈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가난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찾는 나의 눈은 지금도 빛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 안에서 만이 나를 빛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나의 삶에 행복을 느낀답니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고통도 이제는 너무도 감사할수 있는 당신의 사랑이었음을 당신께 고백합니다.

정말 그렇게 저는 삼십대를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을 먼저 선택해 주었던 아름다운 사제들이 있어서 저는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십대가 되었을 때에 저는 아주 자신있는 삶을 살았던 생각이 납니다.

저는 삶에 대한 애착이 참 강했던 것을 알았읍니다.

내게 주어진 가난한 이웃들과 그리고 젊음을 가치있게 살려고 고민하는 젊은 빈첸시안들은 그 때에 수도원에 많이 입회를 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행복한 삶에 대한 확신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친구들은 제 곁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 내지는 수도원으로 떠나 보낼 때에는 나에게 많은 슬픔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 보내는 것에 나약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많이 힘들었던 시절도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나약한 마음은 언니의 죽음을 통해 아픔을 다시 겪게 되었습니다.

이별의 아픔도 잘 이기지 못하는 저에게 다가온 두번째의 고통은 바로 언니의 죽음의 대한 사별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자신했던 내 마음안에 또 다시 큰 시련이 닥친 것입니다.

언니를 잘 보내지 못한 너무도 큰 슬픔이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십여년을 같이 활동했던 가난한 나의 친구 이요셉은 사십에 젊은 나이게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어쩜 척추장애를 가진 그는 당연한 예고였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큰 슬픔이 되었답니다.

그 뒤 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행복했던 삶도 어두운 삶의 무기력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육적인 고통하고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이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이 왜 자살을 기도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사는 고통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도피처로 옮겨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장 가난한 이웃들이 있다는걸 이제는 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두번째도 저를 구하신 하느님께 매일 매일을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저에게 가장 가난한 이웃은 환자들이었고 불치의 병을 가진 절망속에 있는 환자들을
저는 가장 많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의 고통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환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십대를 또 다른 고통 안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요한복음 1장1-18절에 나오는 빛이 되어 오신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주의 기도를 하는 일과 중풍환자가 되어버린 나의 친구를 찾아가 중환실에서 밥을 먹여주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는 항상 요셉형제을 돌보아 주는 다른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소 대변을 봐주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와 보였습니다.

요셉형제는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그 친구를 가족보다도 더 많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요셉형제에게 하루에 4번씩 방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먹여주고 소 대변을 도와주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한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 하느님의 사랑을 아주 잘 실천하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항상 내가 아플 때면 나를 아주 편안하게 위로해주는 아주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저는 죽고만 싶었습니다.

잠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밥을 먹을 수도 없었으며 더 큰 증상은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곁에는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위로해준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내 자신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이제는 누구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도 가난한 사람이 되어버린 나자신을 발견한 저는 도저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정신이 아픈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하나 더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한의원에도 가 보았지만 우울증이라는 진단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동생의 도움으로 다시 한의원을 찾게 되었고 저의 진단은 우울증보다는 심장이 약하다는 진단에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너무 깊은 슬픔에서 올수 도 있다는 말씀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은 언니의 죽음과 친구의 아픔!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슬픔이 있었던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약을 먹기 시작했고 많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느님을 만나 다시 새로운 삶을 살수 있는 건강한 당신의 딸로 되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되었을 때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이웃이 되어준 그 친구가 지금은 나의 아픔과 시련을 같이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주었던 그 친구가 있어서 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며 그 친구를 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두번째의 고통을 받았을 때 이미 나에게 보내기로 약속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의 만남을 위해 많은 고민과 영적인 상담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정신부님은 우리가 살아왔던 삶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그 혼자 살아가는 그 모습이 성소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앞으로의 미래을 위해 묵상을 하는 숙제를 주셨던 신부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건강을 찾고 일년동안을 생활하면서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우리는 신부님과 충분한 상담을 통해 96년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우리의 결혼을 반대했던 우리의 부모님께 했던 요한씨의 말이 생각납니다.

부모님 중에 어는 한분이라도 돌아가시게 되면 그 때에 내가 다시 아프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저에게 다시는 그런 고통이 오지 않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제가 부모님의 죽음을 놓고 항상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아버지는 결혼한지 2년만에 돌아 가셨지만 행복하게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저에게 맑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죽음과의 사별을 깊이 슬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게는 새로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쓰러진 이요셉 형제의 병원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친구 이요셉은 가장 가난한 이웃이었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아주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쓰러진지 9년 만에 자기의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은 시신기증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빈첸시안으로 살았던 그에게 정신부님은 최초의 빈첸시안장으로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2004년 5월에 다른 많은 기증자 120분을 용인공원 묘지에 안장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믿음의 친구로 저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우리들의 많은 아름다운 친구들을 기억하는 좋은 추억을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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