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9세기와 20세기의 수많은 공허한 환상들 속에서도 인간의 현실적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서 현실이 관념론 이상의 것임을 보여 주었다. 앙트완느 슈브리에(Antoine Chevrier) 신부는 바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슈브리에 신부를 총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용에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느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이 침착하고도 온화하며 혁명적인 데라고는 전혀 없는 앙트완느 슈브리에는 성직자들의 모임에 들어가는 것을 차츰 기피하게 되었다. 그 당시 리용 교구의 사제들은 부르주아 집단을 추종했는데 그들에게 슈브리에 신부는 괴짜이기도 했으며 방해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들처럼 생활하지 않고, 리용 근교의 하층 프롤레타리아 비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또 그 나라의 국민, 문화, 계층과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보다는, 식민지로 만드는 집단적인 파견에 더 익숙한 선교사들에게도 그는 역시 상식을 벗어난 기인으로 보였다. 그 이유는 그가 남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일상의 단순한 복음 전도를 통해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성직자 집단들이 당연하게 강요한 틀을 거부하기 위하여 앙트완느 슈브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그 무기는 이전에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또 그 이후로는 요한 23세가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즉 인내, 화합, 친절, 자애, 온유 그리고 사람들을 경탄케 하는 끈기 있는 부드러움이었다.
그 싸움에서 앙트완느 슈브리에를 지탱해준 것은, 그가 진실로 가난한 이라고 생각한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충실이었고, 또 모든 불행한 이들에 대한 조건 없는 충실이었다. 그는 그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나머지 가정을 떠났고, 당시 사제들의 생활 조건도 버렸으며,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가난한 이를 섬기는 이가 되었다. 그가 섬기고자 했던 주인은 가난한 그리스도요,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는, 라므네가 말한 바와 같이 ‘부자나 권력자의 세계가 아니라 약한 이, 비천한 이, 가난한 이의 세계이며, 지배 계층의 세계가 아니라 민중의 세계요, 증오와 지배의 세계가 아니라 형제애와 사랑의 세계’였다. 당시 리용 지방은 기업들이 모여듦에 따라, 민중은 프롤레타리아화되어 가고 사회 경제 구조는 전기 자본주의 경제에서 본격적으로 산업화한 자본주의 경제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이 책의 제2부에서는 ‘프라도회’의 창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앙트완느 슈브리에는 자신이 속한 그룹의 쇠퇴와 경직된 상태를 알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그룹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가 시도한 방법은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처음부터 매우 잘 짜인 계획에 따라 창립하고자 했던 수도회, 즉 ‘예수회’ 란 확고한 조직을 만들었던 방법과는 다르다. 슈브리에 신부는 비범한 조직가가 아니라 단지 보잘것없는 일상적인 일의 힘을 믿는 끈질긴 장인이었다. 그래서 19년 동안 이 방법을, 더디기는 하지만 충실하게 실행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나긴 작업이 갑작스럽고도 맹목적인 본능에 따라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여 앙트완느 슈브리에는 처음부터 자신이 구상한 건물의 크기를 숙련된 장인으로서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대단한 역량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시대의 사제들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통찰력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그는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과 비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하여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브리에 신부는 대단한 정신력도 큰 이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 존재,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 그런 ‘특징’ 없는 사람이었다. 주교나 다른 사제들도 ‘그에게 수완이 있다.’ 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새로운 사제회를 창립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가 그 시대와 오늘날에 어떤 점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슈브리에 신부가 어떤 절대적인 인간으로 생각되게 하거나, 또는 오늘날 우리가 있는 그대로 모방해야 할 하나의 모범으로만 묘사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예언자가 당하는 최악의 배신은 제자들이 스승의 삶을 분별없이 모방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날 슈브리에 신부의 제자들이 스승을 무턱대고 모방만하지 않도록, 그가 그 정도로 위대한 인간도 아니었고 뛰어난 스승도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바로 말해서 그는 모방해야 할 모범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우선 모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가르침이나 복음적인 가난의 권고에 따라 자기 자신을 뛰어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이 아니다. 시 외곽에 있는 교회에 파견되어 가난한 이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 사람들을 알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새로이 알게 된 이 세계 앞에서 스스로 묻고 얻은 결과는 훌륭한 해답도 사업도 아니었고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따라 사는 것이었다.
슈브리에 신부는 ‘본다’는 것과 ‘산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사람은 물론 유례없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독특한 면을 지닌 의미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운명을 떠맡고 있는 비천한 이들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는 농민들로부터는 확고한 현실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육체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일상 생활로부터는 진실한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다. 결국 그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너무도 강한 일상적인 양식(良識)으로써 복음적인 생활을 진실하게 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는 사제들이나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의 삶에 어떤 빛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