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32

2006. 7. 30. 오후 11:28:22

글자

[와이드인터뷰] 우승 이장수감독 오뚝이인생

 

지난 27일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삼성하우젠컵 12차전. 비기기만해도 자력우승이 확정되는 서울은 후반 막판까지 라이벌의 거센 공세에 밀려 1-0으로 뒤지고 있었다. 패색이 짙던 후반 39분 2군에서 갓 올라와 두번째 경기를 뛰고 있던 천제훈의 30m 중거리슛이 상대 네트를 출렁이는 순간 이장수 감독은 얼마나 기뻤던지 껑충껑충 터치라인을 넘어 그라운드 한참 안쪽까지 뛰어들어갔다. ‘충칭의 별’에서 명실상부 ‘서울의 별’이 된 이장수 감독(50)의 ‘오뚝이 인생’이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첫번째 좌절을 딛고 ‘충칭의 별’이 되다

86년 유공에서 현역 은퇴한뒤 호남대 감독을 거쳐 88년 일화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시작한 그는 박종환 감독밑에서 일화의 정규리그 3연패(93~95년)를 이끌면서 일찌감치 차세대 리더로 각광받았다.

마흔살인 96년 일화의 사령탑에 오르며 화려하게 프로 무대의 전면에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11승10무19패의 평범한 성적을 남긴채 일년만에 중도하차했다. 지도자로서의 첫번째 좌절이었다.

1년간 브라질에서 선진축구를 배우고 들어온 그에게 중국 슈퍼리그의 충칭에서 감독직을 제의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다. “당시 중국리그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알려졌는데 젊은 나이에 그곳에서 실패하면 나중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주위에서 충고했지만 나는 오히려 젊기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임 첫해인 98년 14개팀중 13위를 하던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킨 뒤 2000년 대망의 FA(축구협회)컵을 차지,대륙을 정벌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이국땅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교차되면서 그라운드에서 펑펑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해 이장수 감독은 중국축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감독’이 됐고, 2001년 칭다오로 팀을 옮긴 뒤에도 두번째 FA컵(2002년)을 차지하며 성공시대를 이어갔다. 전성기때 충칭에 있는 ‘이장수 팬클럽’의 수가 10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두번째 좌절을 딛고 ‘서울의 별’이 되다

2002년 말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 궈안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 제의를 했다. 계약 도장을 찍기 직전 칭다오 고위 관계자의 인간적인 호소에 마음이 흔들려 ‘의리를 지키기 위해’ 1년간 칭다오에 잔류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때 이 감독이 베이징을 선택해 중국 축구계의 주류로 진입했다면 2008베이징올림픽에 나서는 ‘대륙의 팀’을 ‘한국인 감독’이 지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사실 중국 축구계에서 이장수를 각급 대표팀 감독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

2003년 말 중국을 떠날 시기라고 마음을 정했을 때 마침 전남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6년간 쉼없이 달려왔기에 한동안 쉴 생각이었지만 전남은 ‘삼고초려’를 다했다. 결국 8년만에 K리그에 복귀했다. 말그래도 금의환향이었다.

하지만 엉뚱한 사태가 벌어졌다. 전남에서 ‘외국인 선수 비리 파동’이 터지면서 당시 구단 사장이 이 감독을 비리의 당사자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내 자식들의 목을 걸고 결백하다”고 항변했고,검찰 조사 결과 아무런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이미 벌어진 구단 고위층과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었다. 부임 첫해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수원과의 4강전에서 1-0으로 석패한 다음날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디찬 경질 통보뿐이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할려고 조국에 돌아왔냐”라고 생각하니 분해서 잠이 안올 때가 많았다고 했다. 지도자로서의 두번째 좌절이었다.

하지만 명문 FC서울이 실의에 빠져있던 ‘충칭의 별’을 불러들였다.

이 감독은 지난해 ‘박주영 신드롬’에 힘입어 서울을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지만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김병지 김한윤 등을 영입해 약점인 수비력을 보강하고 맞은 올해 전기리그에서 극심한 골가뭄에 시달리면서 일부 서포터스들이 ‘이장수 퇴진 운동’을 벌였다. 10년간 프로 감독을 하면서 처음 경험한 ‘퇴진 구호’였다.

하지만 이런 시련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2군에서 성장한 ‘젊은 피’를 중용하는 과감한 용병술로 서울에 6년만의 우승컵을 안겨줬다. 이 감독은 “컵대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날뻔 했지만 애써 참았다”면서 “이제 정규리그와 FA컵 우승에 도전하겠다. 올 시즌 ‘3관왕’도 꿈만은 아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스포츠서울 기사)
 
 
축구경기에서 집중력이 없다면,
또한 공격수의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개인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한발짝 먼저 뛴다면
매번하는 경기이지만 승부는 바뀔 수 있습니다.
'스리백이든 포백이든 중요한것은 공이 있는 곳에서 상대팀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는것"-아드보카트 감독.
역으로 공간을 확보한다면 쉽게 경기를 풀어 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오전의 경기를 하면서 느낀점.)
 

 

야훼여,당신께서 사람의 죄를 살피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그러나 용서하심이 당신께 있사오니

이에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시편130장3-4절)

 

 

열심히 주님을 따른다면...

댓글 2

  • 2006년 7월 30일 오후 11:41

    코치님 감사^^감사^^ 자주 놀러오세염...(퇴계원 촌놈) ㅋㅋ

  • 2006년 7월 31일 오전 1:59

    조태파노 열심히 하는모습 증말 싸랑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