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와 광적인 훌리거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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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들의 계층은 젊은 세대에서 점차 나이든 세대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런 훌러건 조직은 점차 조직화되어가고 일부는 정치세력화되어 가기도 한다. 한국의 붉은 악마와 같은 대표팀 서포터 그룹은 그 영향력이 막강한데 처음 순수하게 출발한 이 조직은 최근엔 자체 스폰서를 받아 자생력을 키우고 조직적인 응원을 기획하는 등 변화하고 있다. 서포터 그룹이 커지면서 이 가운데 과격한 구성원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종종 훌리건으로 바뀌어 폭력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훌리건의 일차적 목적은 라이벌에게 우위를 보이기 위함이다. 폭력을 쓰는 것은 이런 라이벌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한 자기 만족에 다름 아니다. 훌리거니즘은 스포츠 중독이 낳은 시대의 ‘사생아’이다. 지나친 자기 만족 위주의 스포츠 관람형태가 부른 극단적인 형태의 자아 표출의 한 형태인 것이다. 훌리건은 팀을 위해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만족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 뿐이다. 폭력은 중독성을 띠기 때문에 훌리거니즘은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훌리거니즘이 유독 축구에서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야구나 농구, 배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광적인 팬들은 많지만 축구처럼 집단적으로 폭력적으로 돼가는 장면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축구가 지나치게 연고주의와 국가간 경쟁을 지향하며 라이벌전을 유도한 때문일까. 같은 웨스턴 문화권이라고 하는 유럽과 미국만 비교해보더라도 큰 차이를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영국의 훌리건처럼 폭력적인 팬문화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미국에서는 축구란 종목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축구라는 종목이 훌러거니즘을 부추기는 것일까. 지극히 역동적인 축구란 종목의 특성이 팬들에게도 전이된 것일까. 현대기술의 발달은 이런 훌리건들의 조직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훌리건들은 팬진(Fanzine-팬 매거진의 준말) 등을 통해 더욱 세력을 조직화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팀이나 정부, 경찰에서도 이런 훌리건들을 막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CCTV를 설치해 감시한다거나 경기때마다 삼엄한 경비를 펼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훌러건의 출현을 100%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훌리건이란 일반 팬으로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훌리건의 출현은 조직적인 팬그룹의 결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그만큼 관심이 지나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단순히 스포츠로 즐기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목숨을 건다. 이것은 혹 도박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승부에 그토록 집착한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 무언가 큰 경제적인 것이 걸려있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제경기에서 훌리거니즘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보통 월드컵, 유럽선수권대회 등 큰 국제대회에서는 경비가 삼엄할 뿐더러 자칫 국제분쟁으로 비화될 것을 염려해 팬들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팬들은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일어난 사례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더더욱 철통 같은 경계를 하고 팬들도 자중한다. 그래서 과격한 훌리거니즘이 있더라도 조기에 진압될뿐더러 큰 불상사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클럽 대항전, 연고지 라이벌전 등 국내리그에서는 큰 대비책이 없을뿐더러 폭력이 예측불허로 나오기 때문에 종종 불상사가 많이 나온다. ![]() 어쩌면 21세기 훌리거니즘은 어떤 형태로 든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각국 축구협회나 팀은 팬들이 그냥 서포터로 남아주길 바라지만 이런 서포터 그룹들은 점차 정치세력화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훌리건으로 변질돼간다.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축구협회나 구단에서는 어느정도 팬들의 관심이 필요하지만 훌리건은 달갑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축구=훌리건이란 공식은 잘못된 것이다. 훌리거니즘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사뭇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훌리건을 규정하는 것은 힘들다. 세계화와 함께 훌리건 문화의 수출은 또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TV를 통해 서로 배워나가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어떻게 팬그룹을 정치세력화하고 영향력을 늘리는지를 서로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훌리거니즘은 쉽게 해결하기 힘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를 읽어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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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23)오전에 축구를 마치고 양지해장국집에서의 보양탕은
말그대로 보양탕...
무더운 날씨에 몸관리 잘 하시길 빕니다.
|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
(마태오복음 12장 38-42절)
우리 모두 참된 신앙을 유지해야겠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스포츠가 발전하면서 폭력적인 팬문화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축구에선 이런 폭력적인 팬들을 훌리건(Hooligan)이라고 하는데 이 훌리거니즘(Hooliganism)은 축구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오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경기에 대한 경쟁의식이 고조되고 클럽간의 라이벌전이 과격화되면서 팬들간의 과격한 충돌은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본래 팬이란 이중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충실한 서포터로서 경기장의 분위기를 이끌고 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지나친 관심과 열정은 때론 과격하고 폭력적인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왜 이런 훌리거니즘이 나타나고 발전하는 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이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똑부러지게 그 이유와 원인을 밝힌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혹자는 축구장 폭력이 계급간의 충돌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한다. 즉, 노동자나 중산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축구가 점차 부르주아화하면서 이런 문화에 대한 집단 반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훌리건의 계층이 점차 노동계급에서 중산층 이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이론은 맞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