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9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마태오 18,12-14(되찾은 양의 비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버려진 이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주일까지 3박 4일 동안 꾸르실료 체험을 하고 왔습니다. 주일에 본당을 떠나 있는 것이 본당 가족들에게 무척 미안했지만, 이래저래 분주하게 보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잠시 제 자신을 돌아보며 귀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기에 기쁘게 본당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제로서 새로운 활력과 열정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도로써 함께 해주신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께 감사드리며, 예수님과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서 벗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성체조배시간의 일입니다. 세상일을 단 며칠만이라도 잊고 당신 안에 머물며 편히 쉬라고 부르셨던 예수님께서, 제 마음 깊은 곳에 고통 받는 이웃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자신의 탓 없이 쫓겨난 해고노동자들, 구석으로 내몰리고 무관심과 냉대 속에 버려진 가난한 이웃들을 가슴 아리도록 선명하게 제 안에 새기셨습니다.
너무나 아팠기에 성체 안의 예수님께 울부짖다시피 말씀드렸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편히 쉬라고 이곳으로 부르셨으면서, 왜 저를 괴롭히십니까?” 가시관 옆에 놓인 성체 안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의 전적인 순명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죽어야지요. 당신과 함께 죽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죽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기다리던 응답을 들으셨는지, 예수님께서는 제게 다시 평화를 주셨습니다.
저는 어제 기도의 실천으로, 저녁 7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자들을 위한 미사’를, 곧 이어 저녁 8시 40분에는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천막에서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미사’를 이어서 봉헌했습니다. 조금 힘들었지만 내심 뿌듯했습니다. 저를 부르셨던 성체 안의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 자리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 양에게 만족하지 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라고 다그치십니다.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시면서 말입니다.
오늘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스스로의 잘못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오순도순 살아야 할 사회에서 버림 받고 울부짖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복음의 기쁨」에서 ‘버려진 이들’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을 사용하다가 그냥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버리는’ 문화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단순히 착취와 억압 현상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어떤 것입니다. 배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속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배척된 이들은 더 이상 사회의 최하층이나 주변인이나 힘없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착취된’ 이들이 아니라 쫓겨난 이들, ‘버려진’ 사람들입니다”(「복음의 기쁨」, 53항).
교황님께서는 버려진 이들과 함께 하도록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이 되시어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 곁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사회에서 가장 방치된 이들의 온전한 발전에 대한 우리 관심의 바탕이 됩니다”(「복음의 기쁨」, 186항).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87항).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우리는 예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정성스런 기다림의 자세입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이를 보듬기 위해서, 길 잃은 이들을 찾아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차가운 겨울 더욱 추울 수밖에 없는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함께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