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왜 오셨어요.’와 ‘주님, 어서 오세요.’ 사이에서(1130 대림 제1주일-나해)

2014. 11. 29. 오후 8:52:37

1
글자

2014. 11. 30 대림 제1주일-나해


마르코 13,33-37 (깨어 있어라)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 왜 오셨어요.’와 ‘주님, 어서 오세요.’ 사이에서>


성당 문이 열리고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옵니다. 말쑥한 차림의 이들 사이에 아주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이 사나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피곤에 지친 이 사나이는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보입니다. 미사를 마친 사제가 제의를 벗고 나서 성당 마당으로 나옵니다. 신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제의 시선의 어느덧 어느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던 허름한 차림의 그 사나이에게 머뭅니다. 사제는 이 사나이를 본 순간 얼굴빛이 하얗게 변합니다. 사제가 쏜살같이 사나이에게 달려가 소매를 잡아끌어 사제관으로 데리고 갑니다. 사제관에 들어서자마자 사제가 사나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애걸하다시피 말을 합니다.


“주님, 지금 여기에 나타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식대로 잘 꾸려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시려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제발 하늘로 돌아가 주십시오. 우리가 지금처럼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오시지 마십시오.”


허름한 차림의 볼 품 없는 한 사나이, 세상을 돌아보시고 흩어진 이들을 모아 하느님 나라를 다시 세우시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을 남기시고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알았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청년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이죠. 그러나 사제가 된 지금까지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라고 들떠서 외치고 있지만 정작 마음으로는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쌓아 놓은 온갖 탐욕과 불신과 증오의 탑을 허물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오실 것입니다. 차가운 현실의 두꺼운 벽을 뚫고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빚으신 우리’(이사야 64, 7 참조)를 태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 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굳세게 하시어 주님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주시기 위해(1코린 1,8 참조)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오시면 분명 우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계십니다. 현실과 복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도록 만드십니다. 이기적인 탐욕으로 물든 삶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이끄시고자 복음이라는 채찍으로 내리치십니다. 아픕니다. 이 아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삶을 주님의 뜻에 따라 완전히 바꾸는 것이지만, 이 길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 하느님 나라, 그리고 주님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현실에 타협하는 길을 걸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세상살이에는 밝고 총명하지만, 목숨까지 내어놓은 사랑을 다그치는 복음에는 애써 눈을 감으려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깨어 있어라.”(마르 13,37)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꼭 오실 터이니, 주님의 심판을 피해 달아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쁨에 넘쳐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고 예수님께서 다그치십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라는 익숙한 기도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입이 아닌 삶으로 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당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라는 기도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주님, 오지 마세요. 거기 그냥 계세요. 괜히 오셔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려거든 그냥 거기 계세요. 적당히 나름대로 살아가겠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진솔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편안함보다는, 오직 복음을 선포하는 삶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송두리째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믿음의 벗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이 몸이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나이다. 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상지종 신부님 강론

목록 전체보기 →
알몸으로 주님 맞이하기(1202 대림 제1주간 화요일)14.12.02조회 82이방인 백인대장과 유대인 예수님(1201 대림 제1주간 월요일)14.11.30조회 85‘주님, 왜 오셨어요.’와 ‘주님, 어서 오세요.’ 사이에서(1130 대림 제1주일-나해)14.11.29조회 92마지막 날에(1129 연중 제34주간 토요일)14.11.29조회 86자아성찰 : 내적인 표징 바라보기(1128 연중 제34주간 금요일)14.11.27조회 87종말 신앙 : 구원을 향한 희망의 신앙(1127 연중 제34주간 목요일)14.11.26조회 87당당하게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1126 연중 제34주간 수요일)14.11.26조회 91너를 허물고 나를 세우리라(1125 연중 제34주간 화요일)14.11.24조회 91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시간 봉헌(1124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14.11.24조회 88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1123 그리스도 왕 대축일)14.11.23조회 87성숙한 신앙의 척도인 부활 신앙(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14.11.22조회 90예수님의 참가족(112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4.11.21조회 99예수님의 평화(1120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4.11.20조회 92하느님의 보물을 담고 있는 우리(1119 연중 제33주간 수요일)14.11.18조회 93일탈자(逸脫者) 자캐오(1118 연중 제33주간 화요일)14.11.18조회 94만남, 사귐, 따름(1117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4.11.17조회 96믿음의 벗님들께-평신도 주일에 드리는 고마움의 인사(1116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14.11.16조회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