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도로 산다는 것은(1206 대림 제1주간 토요일)

2014. 12. 4. 오전 11: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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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14. 12. 06 대림 제1주간 토요일

(평화방송 라디오 오늘의 강론)


마태오 9,35─10,1.5ㄱ.6-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열 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오늘은 대림 제1주간 토요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설렘으로 시작한 대림 첫 주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아기 예수님을 곱게 모실 작은 구유를 정성껏 만들고 계시는지요.


연말을 맞아 우리는 자연스레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했던 벗들과의 소중한 만남들이나 안타까운 이별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우리의 자그마한 삶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빛나는 순간들이나 애써 지우고픈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들도 품게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묻게 됩니다.


이 시간 함께 하는 믿음의 벗님들은 어떠십니까? 주님 앞에서 한 해를 결산한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일꾼으로서 비록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실 수 있으신지요. 아니면 그저 부끄러움에 주님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신지요.


주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가야 할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최선을 다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 맛 나는 세상, 섬김과 나눔이 넘쳐나는 사람 사는 세상, 기쁨과 희망 가득한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으련마는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가족 모두가 목숨을 끊는 비참한 일들이 이어지고, 모진 마음으로 6년 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가진 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에 피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자신의 탓 없이 삶터와 일터를 빼앗긴 선량한 사람들은 여전히 절규하고 있고,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고통스런 여정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토록 슬픔과 고통, 그리고 절망 가득한 세상 안에서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하였는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나 혼자만의 안락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며 다른 벗들의 아픔을 외면하서도, 스스로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의 말씀은 ‘일꾼으로 뽑힌 이들, 일꾼이라 자부하는 이들은 많지만, 일꾼다운 일꾼, 참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은 적구나.’ 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일꾼답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파견된 제자답게 사는 것이겠습니까? 과연 무엇이 우리를 주님의 참 일꾼, 참 사도로 만들겠습니까?


이에 대한 저의 성찰을 담은 글을 벗님들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벗님들께서 공감하여 주시기를 바라면서.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험난한 삶의 여정에 비틀거리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붙잡아주시듯이


온 몸 감싸는 따스한 햇살 안에서도

냉혹한 세상 추위에 떠는 벗들을

마음 속 깊이 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차마 입 밖에 뱉어낼 수조차 없는

뼛속깊이 치미는 우리의 고통소리를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들어주시듯이


달콤한 세상 소리 가운데에서도

숨죽인 벗들의 신음소리에

애써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세파에 찢겨져 흉측한

스스로조차 보기 역겨운 우리 모습을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바라보시듯이


곱고 화려한 세상의 겉모습 안에서

상처투성이 일그러진 벗들의 민낯에

정성껏 시선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로서 산다는 것은


탐욕과 부와 권력의 노예가 된 우리를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해방시키시듯이


배부르고 힘 있는 이들의 자유가 찬양 받을 때

삶의 올무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벗들에게

한걸음에 힘차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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