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동반자

2006. 10. 18. 오전 7: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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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동반자

아씨시 마을의 밤, 문을 닫아 건 집들로부터 새어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좁은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자신의 발소리마저도 밤의 정적 속에 빨려드는 듯한 그런 밤, 구름 한 점 없는 맑게 개인 밤하늘에 달빛이 환하게 비치면 록까 마죠레의 새까맣게 솟아올라 있어 마을에 던져지는 그 산그림자는 무서웠다. 이따금 교회의 종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리고 울려퍼진다. 마을 모퉁이에서 젊은 연인들과 부딪치기도 하고 밤길을 서둘러 걸어가는 뚱뚱한 여인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젊은 날의 추억이며 밤이 자기만을 위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무렵의 기억이다. 십대의 프란치스꼬는 친구들과 함께 지낼 때가 많았으며, 특히 많은 친구들과 떼를 지어 마을을 활보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 반면에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도 싫지는 않아 천천히 골목길을 어슬렁거릴 때도 곧잘 있었다. 그리고 또 집집의 벽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고는 이 벽이 미래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 이대로 자기를 지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로와 같은 좁은 뒷골목을 여기저기 언제까지나 헤매던 일도 있었다. 때로는 그런 자신을 마치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갇힌 채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안하는 작은 쥐새끼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 프란치스꼬는 언덕 끝을 한달음에 달려 올라가서 록까 마죠레에 앉아서 달빛을 받으면서 스뽈레또 골짜기가 아득히 멀리 펼쳐지는 모양을 묵묵히 바라다보곤 했다. 하늘에는 별이 빤짝이고 있어 평화로운 느낌이 프란치스꼬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자신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산골짜기를 채우고 있는 깊은 정적 때문인가, 그렇잖으면 멀리서 반짝이는 별빛에 유혹되어서인가? 그의 마음도 자유롭게 환히 열려 갔다. 그리하여 아씨시 마을에 있을 때 항상 느꼈던 갇혀 있다는 생각에서도 어느새 해방되어 갔다. 그러자 마음은 용감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공포도 없어지고, 어떠한 시련에도 대항해 나갈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었다. 어떠한 미래라 할지라도 맞아들이겠다고 마음을 연 그는 하루바삐 새로운 미래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을을 나서서 언덕에 오르면 - 아주 낮은 언덕이라도 - 프란치스꼬는 자연과의 일체감에 젖을 수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잠깐 동안 생각에 골몰하고 나면 이제 마을로 내려가 친구들에게로 돌아갈 준비가 된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진저리가 날 만큼 수다스럽던 소년이 그토록 오앤 고독의 시간을 언덕 위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 것인가? 프란치스꼬의 그런 일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글라라 단 한 사람 뿐이었다. 몇 년인가 지난 뒤 프란치스꼬가 병상에서 성다미아노 수녀원으로 옮겨가 글라라의 병간호를 받게 되었을 적에 그녀는 비로소 그 일을 프란치스꼬에게 말했다. 글라라는 어릴 때부터 늘 프란치스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벌써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 매혹되어 있었다. 그 무렵의 그는 항상 떠들썩하고 익살스러워서 같은 또래의 소년들의 선두에 서서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했다. 또는 호기심에 차서 창살 틈새로 엿보며, 밤의 조용함을 어지럽히는 젊은이들에게 상을 찡그리는 소녀들에게 윙크를 해보이기도 했다. 글라라는 그러한 쾌활한 일면뿐만 아니라 인기척이 끊어진 밤거리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슬슬 거닐다가는 도망치는 토끼처럼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가 모습을 감췄다가 이윽고 작은 그림자같은 모습이 달빛에 젖은 록까의 산중턱에 나타날 때까지 지켜보곤 했다. 프란치스꼬는 이제 죽음에 이를 병으로 심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그토록 오랜 옛날부터 글라라가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함께 해주고 있었다는 데 한없는 위안을 느꼈다. 성다미아노에서 보낸 최후의 나날 앞에 와서야 그는 비로소 생애의 처음부터 글라라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늘 등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들이 이윽고 서로 나누어 가지게 될 미래를 향해서 모든 것을 대비해 왔던 글라라 그녀. 오랜 동안 글라라는 그 모든 것을 자기의 마음속에 몰래 숨겨왔던 것이다. 생애의 마지막이 될 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프란치스꼬가 지내온 일생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참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이는 오직 글라라 단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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