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을 받은 삶 : 혼돈 속에서의 관상생활
이 책은 그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대는 자신의 삶이 복잡다단하고 관심거리가 많아서 영적이 아니라고 걱정한다.
그러면서 영성이란 인생살이의 압박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들의 영역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만일 영성생활의 본질이 물러남이라면, 영성의 대가들은 세세대대로 오류를 범해온
셈이다. 이 책은 세상의 태곳적 구도자들이 관상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라고 입을
모은 자질들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탈출'은 이처럼 유서 깊은 영적 토대와 관련된 요소가 아니다.
전승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듯이, 진실로 영적인 사람은 영성이 텅 빈 삶이 아닌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결부되어 있음을 안다.
참된 영성을 밝혀주는 것은 완성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추구, 그것이다.
참된 영성은 혼돈 한가운데서의 관상이다. 참된 영성은 충만하게 사는 삶이다.
우리가 삶에서 지니고 있는 것은 삶뿐이다.
사물들, 즉 차, 집, 교육, 직업, 돈 등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으며 우리 손가락 사이
에서 먼지로 변하고, 비뀌고 사라진다. 사물은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수집하거나 소비하는 어떤 것이나 심지어 삶의 과정에서 체험하
는 어떤 것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향하는 내면에서, 우리가 자기 안에서 끌어내
는 어떤 것으로 성장한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요, 삶이라는 선물이다.
삶을 만들거나 파괴하는 것은 주위환경이 아니다.
연인이 죽고 직위를 박탈당하고 꿈이 무너지고 친구가 등을 돌리는 체험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안다.
우리네 삶의 질은 우리가 단조롭든 특별하든, 또는 일상적이든 결정적이든 간에
삶을 살아나가는 그때그때의 방식이 결정한다. 부자가 아주 불행한 경우,
그리고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경우가 흔히 있다.
노인은 젊은이가 아직 배우지 못한 인생사를 안다.
여자는 삶을 보는 안목이 남자와 다르다.
젊은이는 노인이 더 이상 자신하지 못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남자는 여자가 터득하기 시작한 생존감각을 이미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또는 각자,
우리 저마다는 삶을 풍요롭게 살거나 빈약하게 살거나 택일할 수 있는 폭을 지닌다.
대단히 얄궂게도 이 문제는 결정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우리가 내린다.
여러 세기 전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뛰어넘는 그런 삶을 살고자 열망하던 몇몇 남녀들이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생활양식, 가치관, 마음가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처럼 구도자적 지혜를 지닌 이들은 완전체가 되는 데 필요한 균형을 매 세대에 재확인시켰
다. 이 책은 그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그런 자세, 그런 통찰력은 오랜 세월 동안 검증을 거치면서 그 진실성이 입증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어떤 처지에 있는 누구나 터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는 방법,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 이승 너머의 삶을 알아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자질들을 우리 역시 터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혼돈의 와중에서도 우리를 관상가로 만들어 준다.
시간은 우리를 압박하면서 관상가가 되기에는 우리가 너무 빠르다고 속삭이지만,
우리의 영혼은 더 잘 알고 있다. 영혼은 성찰이 부족하면 죽는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 세계에 너무 깊이 말려들어 있는 까닭에 책임은 우리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맡은 바 공적 임무
에 대처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항상 영적인 문제이기 마련이다.
혼인과 사업, 자녀와 직업은 모두가 관상을 멀리하게 만드는 것으로 단정한다.
우리는 본래부터 이런 사안들 하나하나가 영적 단면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듯이 대처하지만,
사실 근심걱정에 파묻힌 어머니, 성질 급한 아버지, 야심에 찬 간부, 분투노력하는 직장인,
생활고에 찌든 여인, 병든 사람만큼 관상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바로 이런 처지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찰과 이해, 품은 뜻과
영혼의 평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생활형편이나 시기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늘 이와 같은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장 지독한 시기와 상황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추적해왔다.
이 책은 그런 특성들을 되새기고 현재에 적용한다.
종교는 전례와 연결되고 윤리와 연결되고 사상체계와 연결되는데, 이 모두는 선하고 이롭지
만 하나같이 불완전하다. 영성은 성스러운 것들을 의식하는 일과 결부되어 있다.
바로 의식 속에서 전망이 나오고 평화가 나온다. 또한 여기서 인간은 완성을 지향한다.
삶은 참아 넘겨야 하는 일종의 행사가 아니다.
삶은 펼쳐 보여야 할 하나의 신비다.
삶은 이를 살아감으로써 만들어진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우리에게 다가오는 매순간에서 우리가 얻어내는 식별력이 영혼의
깊이를 만들고, 우리는 그 깊이를 삶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온갖 사건들에 투영한다.
이런 자세와 식별력은 우리네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사실 삶은 우리가 저마다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재화이다.
삶은 제아무리 가냘플지라도 우리가 우주 안에서 실질적인 통제권을 가진 유일한 사안이다.
세상은 바쁘다. 때로는 놀랍도록 바쁜 세상이다.
우리는 속도와 압력이 우리를 소진시키고, 우리의 영혼을 말라붙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메
마르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둔화시키고, 삶을 일종의 기쁨 어린 신비라기보다 의무의 연속
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전화를 주고받고, 장을 보고, 빨래하고, 심부름을 하느라 북적이는 좁은 길거리를
뛰어다니고, 판에 박힌 일과로 쳇바퀴를 돌고, 모임에 나가고, 계속되는 질문에 응답하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고, 이런저런 종류의 줄 서기를 하고, 장거리 통근을 하고,
매일 밤마다 늦게 침상에 쓰러진다. 그것도 너무나 늦게!
우리는 하루를 끝내고 눈을 감으며 '삶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하고 의아해한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삶은 너무나 피곤해 정원을 가꾸지 못하고,
너무나 정신이 산만해 책을 읽을 수 없다. 너무나 바빠서 이야기할 틈이 없고,
사람들과 마감시간에 치여 삶을 체계화하거나 미래를 심사숙고하거나 현재를 음미하지 못한
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친다.
이 와중에 인간적이 된다는 의미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 와중에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삶 자체가 삶에 가장 큰 장애가 된다면 대체 우리는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어떻게 얻어낼
수 있겠는가? 우리네 하찮고 시시한 삶을 어지럽히는 개인적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적이 된다는 것, 관상적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가는 길 외에 달리 선택할 길이 전혀 없을 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본보기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는가?
사막 수도승들은 4세기 이집트 황야에서 외롭게 삶의 구성요소들과 씨름을 벌이고, 삶의 기
본 원리를 탐구하고, 삶의 진리들을 시험하고, 이를 찾는 이들에게 자기네 지혜를 전수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기네 발가벗은 소박한 삶 속에서 차이점을 발견했고,
그토록 확연한 빈곤 속에서 그처럼 깊은 의미를 끌어 낼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아
보기 위해 그들 나름의 작은 수도원들을 키워나갔다.
사막의영적 아버지요 어머니인 교부들abbas과 교모들ammas은 뭇 세대들이 의지해 살아갈 말
들을 남겼다. 그들의 말은 15세기가 흐른 후에도 여전히 시대를 관통해서 그 목소리를 높여
우리를 촉구한다. 가장 심란하고 가장 답답하고, 가장 메마른 이에게 깊이와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줄 그 가치관을 방향타요 횃불로 삼으라고!
빛을 받은 삶은 일종의 초대장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삶의 실체를 부여할 목적으로 심리적
단방약이나 영적 기교들을 그만 찾아다니라고 권유한다.
이것은 시대의 시험을 거친 영성 지침을 다시 한 번 머리에 떠올리도록 당부한다.
이것은 우리를 에워싼 주위환경과 상황을 통제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마음의 부스러기들을 쓸어내도록 촉구한다.
또한 우리가 영혼의 눈으로 현재를 들여다보고, 그리하여 삶이 저마다 그 안에 담고 있는
하늘나라의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우리를 우리 자신 안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에서 탈출하도록 끌어간다.
아빠 시소에스Sisoes가 말했다.
"하느님을 찾으라, 하느님이 사시는 곳 말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궁 속에서 살고 숨 쉬고 자라고 성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을 다른 곳, 즉 제한된 장소나 특이한 방법, 산꼭대기나 동굴,
특정한 날 특정한 예식에서 찾는다. 하지만 빛으로 충만한 삶은
하느님이 저기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 계심을 안다. 우리가 붙잡도록!
문제는 오직 하나, 어떻게 붙잡느냐 하는 것이다.
「내 가슴에 문을 열다」
조안 키티스터 지음 / 성찬성 옮김 / 성바오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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