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5월 - 교본의 '금욕'과 '극기'

2006. 5. 26. 오후 3: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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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의 ‘금욕’ 과 ‘극기’- 맥그리거

  금욕과 극기는 우리들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혹은 보다 가치 있는 그 무엇을 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삶)의 어느 일면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친교관계에 해가 되거나 그 친교관계에 방해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본은 금욕과 극기를 자기수련, 혹은 자기훈련이라고 합니다. 이 자기수련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특별한 행위’입니다. 금욕과 극기의 행위는 우리들의 원죄 때문에 필요합니다. 이 원죄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우리들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우리들이 죄에 쉽게 빠지게 합니다. 레지오 단원의 일상생활에서 이 금욕은 무슨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까?

  순수한 개인적 기도의 습관을 예로 들어 봅시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 중에  누가 하느님과 개인적이며 친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즉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특전이 또 있겠습니까.

  금욕 행위는 예수님과 혹은 어머니 마리아와의 친교 및 사랑의 기도, 그리고 천사와 성인들에게 하는 기도에 혼자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순절 동안 매일 미사와 봉성체 참례 시에 모든 종류의 크고 작은 극기행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삼위께서는 은총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되려면 역시 자기 절제와 금욕이 필요합니다.

  금욕의 정신이 있어야 영혼 구원사업과 사도직 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 명의 귀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한없는 인내와 끈기, 친절과 상냥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레지오 단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우리들은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끝없는 근심 걱정과도 맞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쁘레시디움 회합과 상급평의회의 회합에서 상당한 정도의 극기행위나 금욕행위, 또 소박한 희생 등의 문제를 다루어볼 수 있습니다. 권태가 생길 수도 있고 서로 사랑하고 돕는 행동이 점차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게으름, 짜증, 이기심의 유혹을 극복하는 데에는 금욕이 필요합니다. 충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려고 하거나 인내와 끈기를 가지려면 역시 많은 금욕행위로써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금욕과 극기를 하는 주된 목적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보다 충실하고 보람있는 크린스천의 삶과 레지오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우리가 금욕과 극기를 실천하면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하여 속죄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본은 교회의 정신적 유산이 주는 귀중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몇 줄의 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분과 협력해야 한다. 죄 없으신 분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다면 죄인인 우리들은 당연히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범하는 죄의 증거와 흔적은 명백하며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협력하는 보속적 행위를 적극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레지오 단원들은 총체적 레지오 시스템을 통하여  금욕과 보속 활동의 값진 훈련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이 고통은 모든 사람들 삶의 본질입니다. 십자가를 피하는 길은 없으며, 십자가에는 은총과 생명이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주는 삶의 십자가, 속박과 실망스러운 일들 모두가 자신의 성화와 영혼들의 구원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고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위대한 증표이며 그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배당된 고통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성화되고 사도직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태도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경자 에델 퀸은 레지오 단원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화, 즉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삶의 십자가를 기꺼이, 그리고 자진하여 받아들이는 은총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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