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 레지오마리애 '06. 3월호

2006. 3. 6. 오후 6:05:41

글자

성령의 인간이며 위대한 신앙인 성 요셉 - 최광조 신부


  삶이란 크고 작은 만남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우리 삶은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든 선택하지 않고는 삶을 디자인할 수도 없습니다. 만남과 선택이란 우리 인생에서 그만큼 큰 역할을 합니다. 어린 시절 만난 누군가 때문에 꿈이 바뀌기도 하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인생을 원하는 방식대로 설계하느냐 못하느냐는 결국 인생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만남과 선택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는 사주팔자나 풍수지리도 그 근원을 보면 만남과 선택의 문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시간과의 만남(선택)은 사주팔자로 풀어지는 것이고, 사람과 공간과의 만남(선택)은 풍수지리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실질적으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끼리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봄 기운이 생동하는 3월에 우리는 성령의 인간이요 위대한 신앙인인 성 요셉을 만납니다. 요셉 성인을 만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요셉 성인과 마리아의 만남, 그리고 요셉 성인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성 요셉을 통해서 본받을 점은 무엇일까?

  첫째, 요셉 성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엄청난 육화 신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까지 요셉 성인은 남다른 외로움과 고독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자신과의 투쟁에서 하느님을 선택했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곧 미혼모인 여인과 그의 아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세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데 당신만의 몫을 해내십니다. 요셉 성인처럼 우리도 삶 안에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려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둘째, 요셉 성인은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 대해서 어떤 불만과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만과 불평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불화의 요인(미혼모, 자식)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 불평하기보다는 요셉 성인처럼 모든 불만과 불화의 요인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요셉 성인을 볼 때 그분은 쓸개 없는 사람이나 바보처럼 보입니다. 요셉 성인은 약혼녀가 이미 임신했음에도 그냥 살기로 합니다. 아이가 크면서 마리아는 그 아이가 요셉의 아이가 아니라고 틈틈이 상기시키기까지 합니다. 더 속상한 것은 마리아가 자기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하나?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간의 이해심입니다. 배우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요셉 성인처럼 우리도 상대를 이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넷째, 요셉 성인은 임신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보호합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은 후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까지 가서 피난 생활을 합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요셉 성인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것은, 마리아가 겪을 운명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위험과 고통마저도 떠맡아 함께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 성인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이며 훌륭한 남편이고 아버지였습니다. 이 땅에 모든 아버지들이 요셉 성인을 본받아 성가정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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