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저질렀으나 그 죄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자에게 어떤 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의인과 타락한 죄인은 그저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사원의 주춧돌은 가장 낮은 바닥에 놓인 돌보다 결코 높지 않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라 유혹에 쉽게 떨어집니다.
하루에도 적지 않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잘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선(善)과 악(惡) 사이를 줄타기 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본당에 있을 때 가난한 교우 한 분이 자살을 했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던 가난한 처녀였습니다.
무슨 고통이 그리 컸는지 창창한 나이에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장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교우 분들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자살한 사람인데 왜 장례미사를 해 주려 하느냐며 따지러 온 것이죠.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제 정신을 가진 젊은 사람이 모진 목숨을 끊었겠는가?
불쌍한 그 사람의 영혼과,
슬픔 중에 있는 그 가족들을 먼저 위로해 주자.
그들을 죄인 취급하지 말자.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교리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도 당신이 돌아가실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죽음의 문으로 스스로 들어가셨으니
크게 보면 그분도 자살의 길을 가신 것 아니냐?”
그때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열심하다는 사람들이 더 쉽게, 더 많이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었죠,
성당에서 봉사하고 활동하시는 분들,
성당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교리 지식을 내세우면서 스스로 열심하다고 자처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신자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지
교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1997년에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 수녀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마더 데레사가 묻습니다:
“수녀님, 계속 수도자 생활을 하고 싶으십니까?”
젊은 수녀가 대답합니다:
“가능하다면 수녀로 살고 싶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쿨(cool)하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가 함께 기르기로 합시다.”
엄청나게 놀라운 답변입니다.
젊은 수녀는 모르긴 해도 더 열심히 수도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지브란의 <예언자>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죄를 저질렀으나 그 죄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자에게 어떤 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율법에 정통했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 고소인으로 자리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여자를 죽이고
예수님도 올가미에 걸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앉아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죠.
예수님은 말 없는 무언의 행동으로
그들에게 항변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빠져나간 비인간적인 율법은 율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쓰레기일 뿐입니다.
자비는 사라지고 사람을 죽이려드는 율법은 하느님의 법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계명을 팔아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이런 말씀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모세에게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 위에 은총을,
은총과 진리를 받았습니다.
(요한 1,16-17)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간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1 베드로 4,8).
사도 바오로는 자기가 지었던 엄청난 죄를 용서 받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 또한 큽니다. ”
(로마서 5,20)
“죄 없는 사람들부터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이 말씀에 사람들은 문득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씩 둘씩 자리를 떴다고 하였습니다.
바깥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
이것이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에겐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말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기 시작하지 않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