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마치며

2007. 10. 11. 오후 12:35:44

글자
+ 찬미예수님!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 더운 여름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성경공부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분명 주님께서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느꼈던 창세기는 혼자서 읽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감동과 은총을 저에게 선물했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지만 각자 서로 다른 느낌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가고 그런 다양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형제 자매님들을 볼 때마다 ‘정말 신앙 공동체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은총의 선물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리라 믿습니다.
 
창세기를 마치면 저에게 긴 여운으로 남아있는 두 구절은 “너 어디 있느냐?” (3장 9절) 와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15장 1절) 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처음으로 던지신 질문인 “너 어디 있느냐?”는 많은 묵상을 하게 만듭니다. 그 단순한 질문 속에서도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베어납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이리 나오너라”고 하시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아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나의 몸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그분의 생각을 강요하시기 보다 우리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질문 그것은 우리 육과 영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셨습니다. 직장이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사일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리고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는 우리에게 “너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인지 아니면 네가 있고 싶은 곳인지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던지 너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지금 너는 그 곳에서 행복하냐?” 하고 물어 보십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정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고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불행의 많은 부분은 두려움에서 시작하니까요. 미래에 대해서 또는 예기치 못하는 일에 대해서 오는 두려움으로 가진 것이 있어도 쌓아놓은 것이 있어도 늘 불안하고 그 두려움이 불행을 가져오니까요.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이 결국에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지금 내가 가진 문제는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밑거름일 것이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는 결국 행복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 “제 몸이 어디에 있더라도 제 마음은 당신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매 순간 그분 안에 있고자 하는 우리 존재를 확인한다면 그 믿음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이의 조상이 되고 사는 동안 행복을 누렸던 것도 오롯이 믿었기에 그 오롯한 믿음의 끝은 해피엔딩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창세기를 되짚어 보며 묵상하는 저에게 주님께서 “네가 어디에 있던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천칠년 칠월 이십구일 새벽에
 
김영삼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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