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와 이정표

2007. 1. 25. 오후 9:48:56

1
글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복음 선포를 위해 떠날 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다.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돈도 지니지 말고 신발은 신고 잇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하셨다.(마르코 6,8-9)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돈이나 옷가지 등은 지니지 말라고 하시면서 왜 유독

지팡이 만은  지니라고 하셨을까? 그 당시 지팡이는 맹수와 강도를  물리치는 데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안내의 역할을 하는 도구로 쓰인다. 특히 앞 못 보는 맹인들에게 지팡이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것이다.

안내의 역할을 하는 것에는 지팡이와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는 '서울', '부산', '경찰서', '시청'등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준다. 이정표는 이처럼 갈곳을 알려주고 안내하는 좋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이정표는 갈 곳을 알려만 줄 뿐 자신은 가만히 서 있다. 지팡이는 몸소 같이 가주는 데 비해 이정표는 같이 가주지 않는다. 지팡이는 움직이고 행동하는데 이정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남에게 알려주기만 한다. 이정표는 자기는 가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가라고 일러준다. 작년에 세운 성당 표시 이정표는 지금까지 수백 명에게 수백 번 수천 번 성당의 방향은 알려주면서 자신은 성당으로 들어오지 않고 아직도 그 

자리에 서있다.

한번은 서울에서 길을 잃어 어던 이에게 물었더니 방향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또 길을 잃었다. 이정표 역할 이상은 나에게 해준게 없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번은 어떤 이에게 강남 성모 병원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자기도 그 방향으로 간다며 나의 차를 안내하여 병원 앞까지 데려다주어서 지금까지 고마워한다. 이정표처럼 말로만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지팡이처럼 직접 데려다준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팡이만 지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자들 중에서 지팡이 역할보다 이정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안타깝다.

'신부님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한데요' 하고 일러주는 사람은 이정표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신부님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제가 청소를 했으니 안심하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은 지팡이와 같은 사람이다.

어느 본당에나 이정표 같은 사람이 있다. 자신은 이정표처럼 꼼짝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신자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본당에서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비포장 시골 길에서 낡은 버스 한 대가 시동이 꺼져 멈춰 섰다. 30명의 승객에게 내려서 버스를 밀어 달라고 

기사가 부탁했다. 10명은 멀찍이서 뒷짐을 지고 "영차 영차. 더 힘껏 밀어" 하며 입으로만 민다. 다른 10명은

버스에 손을 대고 미는 척만 한다. 힘은 전혀 쓰지 않는다. 나머지 10명만이 힘껏 민다. 10명 덕분에 버스는 다시 시동이 걸리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승객을 데려다주었다. 여기서 지팡이 역할을 한 승객은 10명뿐이다.

나머지 20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 이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본당에서 어던 행사를 하거나 공사를 할 때는 언제나 이정표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이정표가 아니라 지팡이다. 예수님의 제자그 되는 진정한 길은 이정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지파이를 가지고 지팡이가 되어 예수님이 알려주는 이정표를 향해 가야 한다. 꼼짝 않고 자신은 가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갈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지팡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지팡인가, 이정표인가?

 

박용식 신부 수필집 '예수님 흉내내기' 중에서

댓글 1

  • 2007년 1월 27일 오전 10:46

    지팡이..스스로 움직이는 지팡이로 거듭나고 싶네요.아울러 나를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 지탱하는 그분의 사랑이 제 삶에서는 가장 큰 지팡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