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등산화
언젠가 어떤 사진 한 장을 보고
얼어붙듯 묵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등산화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얼어죽은 등반대의
처절한 죽음을 기록한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산 사람들은 얼음 산정을 향해 오르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
젖은 등산화를 가슴에 꼬옥 품고 잠을 청합니다.
그래야 다음날 아침 뽀송뽀송한 상태로
또 걸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 산사람 박인식
얼음 산에서, 머리카락도 수염도 허옇게 얼어붙은 얼굴로
하나같이 등산화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나란히
얼어죽어간 등반대원들의 모습
장엄한 순교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 현장 보도사진 한 장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 우리도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오르고 있고
그 길에서 죽어갑니다
내일, 또 내일, 내일 아침이면 우리도 죽어 있을 것입니다
나, 무엇을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죽어 있을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