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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오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은
'이미 와 있음'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는 이런 인간의 상황에서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주님은 우리의 아빠다.
어떤 격식도 필요 없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베여있는 이 호칭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이 피부로 느낄 만큼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을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원천으로부터
아빠라 부르게 해주신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빠처럼 우리의 아빠로 늘 우리 가까이 계신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우리를
우리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원천으로 이끌어 달라고,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원천의 광채로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잉태되던 때의 그 원천, 내 몸의 고향,
하느님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내가 창조되던
태초의 그 고요와 사랑으로 비추어 달라고,
사랑으로 아름답게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당신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이 몸을
당신의 거룩함으로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당신의 이름을 내 이 몸으로 거룩히 빛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이 빛남을 체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이 몸이 온통 욕정으로 가득 차 있다.
욕정에 가리어 내 몸을 당신의 성사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내 몸을, 그리고 세상의 몸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기도한다. 주님 오소서.
당신은 이미 처음부터 내 몸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까?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뜻이 이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몸에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우리는 이 기도를 인간의 고달픈 상황에서 바친다.
이 고달픔은 때때로 내 몸 안에 주님의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괴로울 때 나는 배고픔과 괴로움에 짓눌려 주님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나는 배고플 때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자 한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용서가 안될 때 나는 주님의 용서하는 손길을 느끼고자 한다.
우리에게 잘 못한 이를 용서하게 하소서.
나를 용서하는 당신의 손길을 느끼게 해 주소서.
용서를 못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괴로운 것이 있을까?
때문에 나는 용서 못하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을 이해한다.
그는 지금 용서를 하지 못하면서 차가운 인간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부터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기도한다.
주님, 이 괴로움 속에서 당신을 느끼게 해주소서.
유혹 속에 당신을 보게 해주소서.
지옥에서 당신을 보게 해주소서.
당신을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 해주소서.
- 이제민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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