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카라바지오(Caravaggio) 의 '의심하는 토마'를 보며[정만영신부님]

2007. 4. 26. 오전 10:12:31

글자
 
2
 
요한 복음 20,19-31
 
사실내가 그리스도신자가 이후…12제자들에 대한 간간한 평들을 들어온 것중에 최근까지 가장 머리 깊숙히 박혀 있는 왜곡된 모습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복음에 나오는 토마의 모습이었다. 토마는의심많은 토마 ‘ 모습으로 주일학교부터 쇄?R아닌 쇄뇌을 받아서 그렇게 굳어졌다. 그러므로 나는 , 안에 일어나는 불신과 의심들과 싸움을 수도 없었구, 해서도 안되는것처럼 신앙교육을 받았다. 왜냐하면, 토마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니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성보단 신앙이란 이름하에 믿음의 폭력앞에 나의 이성의 노력은 무참히도 말살당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성장했다.결국 이는 나만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나와 같은 이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선입견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기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후 수도회에 입회해서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토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오늘 복음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 투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제자중에 모습이 되었다.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는데 가장 영향을 미친 토마에 대한 모습은 ≪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요한 11,16  ≫ 이었다. 기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이며 예수를 위해 몸살라 헌신했는가를 충분히 묵상할 있다.
 
그러니까..오늘 복음의 교훈은 무엇일까 ? 복음환호송에 인용된 <토마스야, 너를 나를 보고야 믿었지만,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도다>라는 예수의 말처럼 그저 철석같이 그의 부활을 믿으면 믿음이 굳건한 사람이 되고, 나처럼 토마의 심정을 가진 사람은 믿음이 없는고로 자신의 가슴을 펑펑치며 애통해야할까 ?..
           
이런 나에게 오늘 복음과 관련되어 토마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싶은 바램을 넘어, 직접 부활한 예수의 몸을 만져보고 싶은 깊은 원의, 욕망을 생각하게하는 화가와 그림이 있다. 내가 Caravaggio 알게 것은 2000 대희년 세계청소년대회를 맞이하여 예수회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석한 프랑스 청소년들과 함께 북부 이태리에서 부터 예수회와 관련된 곳을 순례하며 최종적으로 로마를 방문했을 때였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계단과 분수 바로 앞에 있는 성루이 프랑세 교회에 있는 (이태리 이름으로는 S. Luigi del Francesi이며불어론Saint-Louis-des-Francais ) ≪ 마태사도의 부름 ≫ 이란 그림을 이후였다. 참고로 교회엔 그의 ≪ 마태오사도와 천사 ≫, ≪ 마태오 사도의 순교 ≫ 이름의 다른 그림 두점이 있다. 그림이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내게 주었는지빛과 어둠….사람들의 표정들 베드로를 사람의 특히 예수의 표정….춤을 추는 듯한 추임새와 마태오를 부르는 춤사위 같은 어깨와 손끝의 모습들-아마도 이는 당신의 제자를 부르는 흥이 한참 돋은 예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이전에 보았던 다른 그림과 다른 끌림이 있다.
내가 프랑스 유학을 통해 무식한 내게 그림에 대해 새롭게 눈을 있게 만든 화가가 있다면Marc Chagalle Caravaggio ( 본명은 Michelqngelo Merisi Caravaggio) 꼽을 있다. 만남 이후 그의 삶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이의 그림들이 끌리게 되었다. 카라바지오는 한마디로 하면 당시 르네쌍스 이후 바로크 미술의 초기시기의 사람으로 당시 미술계에 있어 이단아이자 문제아 였다. 하지만 그의 영향은 스페인과, 네델란드, 특히 렘브란트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의 미술사에 있어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다빈치나 미켈란 젤로만을 알고 있었는 내겐 그의 그림과 만나고, 그를 알게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가 그린 성화의 등장하는 성인들과 예수의 모델은 길거의의 사람들이었다. 예로 마리아의 모델은 자신의 애인이었으며, 제자들의 모델과 성인들의 모델은 길거리의 술주정뱅이 노숙자들이었던 것이다. 고고한 귀족과 추기경, 왕들이 초상화와 성화의 모델이었고, 당연히 그랬어야하는 당시에 그런 그런 도발적인 자세에 대한 미술계와 당시 귀족들의 충격과 분노는 아마도 오늘날 조선땅에서 벌어지는 대통령과 영부인의  고졸학력이 문제시 되는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것 같다.  참고로 그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의 인터넷 싸이트에 가면 그의 몇몇 그림을 볼수 있다.  http://www.ibelgique.ifrance.com/artsapproches/Caravage.htm  자세히 알고자 하면 Caravaggio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보다 많은 자료를 얻을 있을 것이다.
 
 
I. 카라바지오의 그림으로 되돌아 와서….
 
 
 
어둠과 빛이 그림의 대비로 드러난다. 검은커텐이 쳐져 있는듯한 배경이 먼저 인상적이다. 마치 연극의 무대에 있는 배우들을 보는듯 하다. 어둠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은 왼쪽위에서 내려 쬐인 조명으로 인해 빛이 떨어진 예수의 오른쪽 어깨와 흰목덜미, 왼쪽 작은 어깨쪽지, 제자들의 주름진 이마,  대머리, 빛이 떨어진 콧등, 실밥이 찢어진 토마의 왼쪽 어깨다른 제자들의 진지한 표정들을 명확히 읽을 있다. 반대로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어둠으로 인해  옷주름등, 사물이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그런 장면이다.  
카바라지오의 속성상, 그림 역시 대단한 불경스러움에 틀림없다. 감히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젖꼭지가 훤히 드러나 있질 않나 상처에 손가락까지 집어 넣어 놓질 않나화려하고 비단옷 입은 제자들 대신에 허름하고 어깨쭉지의 실밥이 떨어진 옷을 입은 토마등을 보고 아마도 완고한 사람들은 비성서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더구나성인이나 예수의 머리뒤에 있어야 후광도 없으니…..어디 거룩함이란 하나도 찾아 볼수 없는 그런 그림인으로 보일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먼저 토마만이 의심을 품고 있었다라는 사실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겠다. 다른 두제자의 표정을 보면 토마의 표정 이상으로 진지하다. 이들이 숙인 고개의 각도와 눈빛의 방향이 이를 말해준다. 누구였을까 ? 하는 물음은 그저 의문으로 열어 놓고 싶다. 바로 나일수도 있기 때문이며, 그림을 보는 다른 3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II. 토마의 모습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예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집어 놓은 것은 닌것으로 본인다. 예수의 왼손이 토마 오른손을 잡아 당겨 토마의 손가락을 자신의 상처에 집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토마는 아마도 주저했는듯 했다. ≪ 감히 주님의 상처에 내가 어찌 손가락을 댈수 있으며, 더구나 손가락을 무례하게도 쑤셔 넣을까 ?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말로는 비록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큰소리 쳤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한치정도의 손가락을 예수의 상처에 집어 넣고 있는 이 행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도 않은 듯 하다. 그가 얼마나 긴장했으면, 자신의 왼손을 허리춤에 대고 있겠는가 ? 아마도 식은땀은 물론이거니와 떨리는 자신을 진정하기 위해 무식적으로 허리춤으로 겨우 진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깊히 파인 여러개의 주름살은 그의 놀람을 떠나 경악스러움으로 느껴진다.
 
 
  
III. 예수의 모습
그런 토마의 손을 덥석 잡아….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한쪽의옷을 드러낸채,  휭허니 구멍이 왼손으로 토마의 손을 잡고, 손가락까지 자신의 상처에 집어 넣게 했다. 연필을 깍다, 무엇을 만들다, 칼에 작은상처도 쓰리린데
풀입에 상처도 물이 들어가면 쓰라린데….
자신의 상처에 한치 손가락을 집어 넣을때의 그는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
그림의 등장하는 다른 세사람 모두는,
더블어 그림을 바라보는 나와 모든 관중들은 시퍼런 눈을 뜨고 자신들을 위해 죽음을 당한 예수의 상처를 확인하려 들지만……
무엇이 이런 적극적인 예수의 행동을 낳게 했을까 ?...
 
그의 눈을 본다.
아픔을 잠아내는 그의 지극히 감은 눈을 바라본다.
예수
그는 눈을 감고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다.
자신의 아픔까지치부까지 드러내며….
침묵의 언어로 행위의 언어를 드러내고 있다. …
 
요한 복음사가가 이미 신학적,교리적인 입장이 전제된 채 이 복음을 서술했다라는 사실은 전제하기 보다도…,
진정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당신이 말했다고 해도…
나는 불경스럽게도 당신의 보고 싶고,
가시관 썼던 당신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싶고,
못 자국이 훵하니 난 당신의 손등을 쓰다듬고 싶고,
당신의 차가운 주검을 만지고 싶고..
내 손가락으로 당신의 상처난 가슴에 대보고 싶고,
당신 앞에 엎드려, 이젠 내가 구멍난 당신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다.
비록 이런 내 원의가 불경하고 믿음이 없다라고 해도…
이런 내가 어리석다라고 해도……….
 
IV. Epilogue.
 
그의 모습에서
반찬거리를 다듬다 검은 부억칼에 손가락을 베인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
베인 손가락을 아무렇지도 않은 ,
흰무명 한조각으로 얼기설기 대충 감싼 손으로
다시 저녁거리를 준비하던 희미한 어미니의 모습이 또렷히 오르는 것은 ?...
검붉게 피가 베어 나온 흰무명 조각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 것은….
≪  아퍼 ? ≫ 질문에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던 얼굴과 눈동자….
그리고  상처에 물이 닿으면
그것이 아픔보다,  얼마나 깜짝 놀라게 하며 아리고 쓰린지를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시간까지
그것을 알기까지
쓰린 아픔을 알고 후에…..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마음을 알고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작은 사랑을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당신께서는 세상을 떠난 후란 사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마음이 토마의 마음인지 마음인지….
 
참고로, 렘브란트의 '성토마스' 란 같은 성서주제의 그림을 보는것도 Caravaggio의 그림을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고, 두 그림이 비교를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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