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의 도량
제나라 맹상군의 문객 중에 맹상군의 부인을 사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어떤 사람이 맹상군에게 말했지요.
“당신의 문객으로서 당신의 부인을 몰래 사모하고 있다니 너무나 의롭지 못한 자입니다. 당장 처단하십시오.”
맹상군이 태연하게 말했답니다.
“서로 좋아하여 사모의 정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 그대로 두고 절대 입 밖에 내지 마시오.”
그리고 일년쯤 지난 후에 맹상군이 자기의 부인을 사모하던 자를 불러 말했습니다.
“그대와 나는 교유한 지가 오래인데 높은 자리가 나지 않아 주지 못해 미안하오. 내가 위군과는 친한 사이여서 부탁을 해 놓았으니 위군에게 가서 교유해 보면 어떻겠소?”
그가 위나라로 가자 과연 크게 환영을 받아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가 나빠지고 위군이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그 문객이 나서서 말했답니다.
“제가 듣건대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침략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했었습니다. 지금 사소한 감정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시는 것은 선조의 맹약을 어기고 맹상군을 속이는 일입니다. 부디 제나라에 대한 감정을 푸십시오. 만약 제 말을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면 제가 불초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당장 제 목의 피를 내어 전하의 옷깃에 뿌리겠습니다.”
그러자 위군이 마음을 풀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제나라 사람이 말했습니다.
“맹상군은 과연 훌륭하다. 화를 바꾸어 공으로 만들었구나.”
맹상군은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원수를 은인으로 만든 것은 그가 참으로 넓은 도량과 용서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혼신을 쏟기 마련이지요. 남을 알아주고 남을 용서하면 우리도 알아줌을 받고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일곱 번 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490번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지요. 용서는 숫자놀음이 아니라는 말씀, 거기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일만 탈란트나 되는 돈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 동료의 백 데나리온밖에 되지 않는 작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고 감옥에 가둔 일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은 사람들인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도록 초대하시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용서받았다는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약한 존재, 자기가 그렇게나 많은 빚을 탕감 받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자기에게 조금 빚진 사람에게 호통을 치는 그런 일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는지요?
하느님은 참으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분, 그분의 용서를 체험하면서 그분의 용서 앞에 내가 기실 용서하지 못한다고 곧추세웠던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던가를 깨우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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