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3.화
| 요한 복음 13장 21-33.36-3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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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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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높이 김유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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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이 누워 있어도 각기 다른 꿈을 꾼다는 말이지요. 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각기 생각하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이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스승님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베드로에게까지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13,38)이라고 예언을 하십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눈높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스스로 깨닫고 알아듣기를 바라십니다. 특히 요한 복음에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유와 가르침을 수없이 반복하십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창세 1,26 참조)로 만드셨습니다. 즉 신의 모습이 우리 인간들 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존중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이나 가축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 때 심어주신 당신의 모습이 상처입지 않도록 내 속의 굳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는 생활에 노력을 기울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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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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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뜨거운 햇빛에 지쳐 로비에 앉아 무심히 밖을 쳐다보다가 미군병사와 함께 웃으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 캐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라크 평화팀의 리더인 캐시 캘리는 미국의 유명한 평화운동가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보다 위험한 용기가 필요하다’던 그녀의 말이 어쩌면 저를 바그다드까지 데려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미군과 그토록 오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미군이 이라크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가두고, 문화재를 약탈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는 점령군의 범죄로 한창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던 저에게는 그 모습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난 전쟁을 반대해서 이라크에 왔어요. 그러나 그것이 미군 개인에 대한 증오는 아닙니다. 저들도 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대부분 어린 군인들, 경험이 없는 사병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죠. 그 두려움으로 총을 쏘고 난폭해지고 있어요.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되면 저들도 평화를 위한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돼요. 우린 이미 베트남전을 통해 많은 참전 군인들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로 전향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팀을 보세요.” 그렇지요. 저는 감정에 휩싸여 그런 마음의 균형을 잃곤 합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그녀는 두 번이나 노벨평화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예전엔 평범한 교사였다고 합니다. “1996년까지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어요. 그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이라크에 오는 여행을 했지요. 그 첫 여행에서 참 많이 울었어요. … 전쟁은 끝났지만 그때 쓰인 무기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참혹하게 아이들을, 아니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아이들까지 학살해가는 것인지. 우는 것으로 평화가 오진 않아요.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되요. 그때부터 더 많은 여행을 하기 시작했지요. 세상의 그늘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 거죠.” 임영신 | 소나무 | <평화는 나의 여행>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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