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01 /[강론] 고통 받는 하느님의 종[조욱현신부님]

2007. 4. 3. 오후 12:44:32

글자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오늘은 ‘성지주일’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축제 기분에 들뜬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대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고 있다. 이 예수님의 성대한 예루살렘 입성은 수난의 짓누르는 고통을 먼저 거쳐야만 하는 ‘야훼의 종’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예언적 전조와도 같은 것이다.

제1독서: 이사 50,4-7: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제1독서는 ‘야훼의 고통 받는 종의 셋째 노래’를 전하고 있다. 이 ‘종’은 주님의 사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당해야할 고통에 대해 예고하고 있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6절). 즉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표현의 일부가 여기서 이미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종은 주님께 대한 충실성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주 야훼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빛 변치 않는다”(7절).

복음: 루카 22,14-23,56 - 주님의 수난

루가복음에서는 수난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절대적 ‘지배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휩쓸어버리려는 그 파괴적인 공격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계시다. 루가 복음에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당신의 생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심”(9,51-19,27)과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예루살렘에서의 사명과, 당신의 마지막 공적 가르침(금화의 비유), 그리고 이후 직접적으로 계속되는 사건들, 즉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 재판, 십자가, 부활과 그후의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들을 일치시키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빠스카를 거행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이 과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려고 얼마나 별러왔는지 모른다”(22,15절). 이 빠스카는 확실히 죽음을 통한 봉헌의 표지로서 식탁에 놓여졌던 최후의 만찬의 빵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그분의 생명을 통한 희생적 봉헌의 예표이며 동시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22,19-20절).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도 당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걱정을 하신다. 그래서 슬픔에 잠겨 십자가를 따라오는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오죽하겠느냐?”(23,28.31절). 그러나 애석하게 생각하고 울어야 하는 사람은 패배당한 것같이 보이고 천시당한 예수님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죽음에 처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 여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를 모르면서 우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 있어서도, 다른 공관복음의 절망적 외침인,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시편 21,2)가 아니라, 아버지께 평온히 의탁하는 태도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23,46절; 시편 30,6). 그러므로 아버지 ‘하느님’이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루가복음은 예수님의 수난사를 과장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께서 가지셨던 ‘고뇌’에 대해서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음의 고통과 싸우면서도 굽히지 않고 더욱 열렬하게 기도하셨다. 그러는 동안 핏방울 같은 땀이 뚝뚝 흘러 땅에 떨어졌다”(22,44). 이 표현은 예수께서 ‘수난’을 능히 극복하고 지배하실 수 있지만, 죽음 앞에서의 인간적 한계와 번민에서 그를 제외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위대하신 것이다. 이 때에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만 절망의 공포와 유혹을 물리칠 수 있으셨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22,42).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人性)은 지극히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처지에 처하게 되는 바로 그 때 참으로 신성(神性)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수난기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비가 드러나는, 즉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들과 군인들의 태도와는 달리 적개심보다는 호기심과 놀라움에 가득차 있었다. 그들 마음에는 후회의 감정이 있었다. “구경을 하러 나왔던 군중도 이 모든 광경을 보고는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23,48). “이 모든 광경을 보고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 사람이야말로 죄없는 사람이었구나!’하고 말하였다”(23,47). 이는 마르 15,39에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로 더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백인대장의 이 고백은 그 고백자체보다도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을 직관할 수 있는 그 능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의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구원’되도록 한다. 오른 쪽 강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못 박힌 다른 강도의 예수께 대한 조롱에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하고 꾸짖고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하고 대답하셨다(23,40-43). 십자가의 예수님의 죽음은 그 강도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은 인간의 모든 비열한 행위와 배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에게만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것을 모르고 잘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23,34).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제2독서: 필립 2,6-11: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높이 올리셨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시는(6-8절) 그리스도의 낮추심에 대한 훌륭한 묵상이며 찬가라고 하겠다. 그분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만 그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에 들어가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9-11절). 이렇게 빠스카의 빛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 온 땅을 뒤덮었던 그 무서운 어두움을 이미 벗겨내고 있다(루가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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