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질 각오 - 정필종 신부님

2007. 4. 1. 오전 8:52:30

글자

복  음 : 루가 22, 14-23. 56
 
  오늘은 주님의 성지주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2000하고도 한 번째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준비운동에 들어가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신부가 예수님의 죽음을 두고 장난치신다고 꾸중하실런지는 몰라도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매 년 하는 행사의 하루를 지나고 있는 듯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게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순 제4주일 때에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강론을 이런 대화식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잠시 재현해 보겠습니다.


  "얘들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지가 얼마나 되셨지?" "2000년요". "그런데 어제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제 매달려 있으시기 힘드시다고 내려오고 싶으시데드라". 아이들 묵묵부답.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려오시려면, 누가 대신 매달려야 하는데, 매달릴 사람?" 묵묵부답. "그럼 내가 매달릴까?" 아이들 전체가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예!!!" 그 대답을 듣는 순간의 아연함이란 말입니다. 저 녀석들이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서도 그렇게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과 솔직히는 일말의 서운함도 함께 들었습니다. 이 조그마한 사건을 계기로 저는 '십자가를 진다는 것'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신자도 아닌 아가씨들의 악세사리의 일종으로 자리잡고 있는 십자가. 그 가녀린 목이나 귀에 달랑거리고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저 아가씨가 저 의미를 알면 십자가 목걸이, 귀걸이는 다시는 안할 것이라고 혼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점점 커져가는 교회의 첨탑과 그 안을 장식한 화려하고 커다란 십자가를 볼 때도 과연 우리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저토록 크고 화려한 십자가로 계속해서 성전을 꾸미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우리는 공부 잘 못하고 말썽부리는 아이의 부모들이나, 술로 날을 지새우는 남편이나, 늘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볼 때, '아이구 내 팔자야!'를 속으로 되뇌면서 그래도 이게 내 십자가라면 지어야지 라고 말하곤 합니다. 언제부터 팔자가 십자가가 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질 각오'라는 구호가 생긴 유래는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라고 외친 것은 예수님 당시, 힘으로써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젤롯당'(열성당원)들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이는 로마 집권자들의 손에 정치범으로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 까닭은 당시 로마정권이 반로마 항쟁가들만 십자가에 처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곁에서 함께 처형된 소위 '강도들'은 강도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집권자들에 대한 항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집권자들은 언제나 안정을 희구하고 새 것을 싫어하며, 어떤 형태로나 질서를 문란케 하는 대상을 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함'은 죽기를 각오로 하라는 지상명령에 진군나팔로도 읽혀집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계, 새 가치관, 새 윤리관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됩니다.


  이런데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실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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