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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당신을 위해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
모든 것이 끝장 났습니다. 찬란한 태양도 빛을 잃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소리치던 군중의 그 함성도 이슬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적뿐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 오실 때에 기쁨에 넘친 함성은 온 대지에 울렸고, 천사들의 노래는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할 때 당당하던 그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 나자렛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웃음 속에서 성부의 반기시는 말씀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처량한 모습은 무엇입니까? 아니지요? 아니겠지요? 우리가 허깨비를 보는 것이겠지요? 사람보다 못한 벌레 취급을 받으시고 온갖 발길질에 야유를 들으면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 받는 이들과 함께 거닐면서 수많은 기적을 베푸실 때 그 놀라운 모습은 어디에 갔습니까? 배를 부서뜨릴 것처럼 보이던 풍랑을 잠재우시고,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그 힘은 도대체 어디로 살라졌단 말입니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목놓아 불러보아도 아버지마저 외면하시니 정녕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 왜 아무 말도 없으십니까? 아버지도 침묵 속에 아무 말도 아니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옷 벗어 나귀 발굽아래 깔고, 성지를 흔들며 우리의 임금님이 오셨다고 소리지르던 군중들의 함성도 이제는 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절대 당신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던 베드로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도 이제는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삭막한 땅, 썰렁한 찬바람만 몰아치는 골고타 언덕에는 힘없이 축 늘어진 처절한 당신의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희망도 사라지고 꿈도 사라지고 기쁨도 끊어진 채 해골산 마루턱에 십자가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멸망할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십자가는 사랑이요 생명이요 구원이라는 것을 압니다. 십자가는 하느님과 죄 많은 우리 인간이 하나되는 자리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모아진 곳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압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인간의 한 운명을 봅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산고의 고통이 있어야 하고, 한 인간이 성장하고 철이 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통과 좌절을 맛보아야 함을 압니다. 그래서 고통과 좌절 속에서 고독과 절망의 어둠 속에서 아버지를 불러 본 사람만이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음을 압니다. 그래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죽어야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압니다. 삭막한 언덕 위에 걸쳐있는 두 개의 나무가 교차하는 곳에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짐을 봅니다. 거기에 영원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남편의 고통 속에서도 아내의 이해가 있는 곳에, 아내의 고통 안에서도 남편의 이해가 있는 곳에, 자식들의 고통 속에서도 부모의 이해가 있는 곳에는 화해가 있고 사랑이 있음을 봅니다. 주님! 이제사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죽는 것'임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임을, '당신을 위하여 매일 제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주님! 언제나 자기를 방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 누구에게나 지려고 하지 않고 승자의 오만 위에 곤두서서 /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죽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자아에 죽지 않으면 / 불사신의 사랑에 소생될 수 없음을 예수여! 우리에게는 당신의 굳셈보다는 약함이 / 무한한 약함이 필요합니다. 저주를 당해도 항거치 않고 / 넘어뜨림 당해도 비난치 않고 죽임 당해도 원망치 않는 / 사랑에 찬 약함이 필요합니다. 지옥의 죽음도 이길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약함이 이웃에게 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늘 머리를 쳐드는 나의 오만을 당신의 약함으로 부드럽게 해주십시오 |
2007.04.01 /사랑은 당신을 위해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 - 김시영 신부님
2007. 4. 1. 오전 8: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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