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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 값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제 멋데로 사용하면서 마치 자유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해야 되는 것처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빼앗아버리기보다 그들의 나쁜 마음으로 부터도 당신의 선한 의지를 끌어내기 위해 애쓰십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의회에서 다른 이들과 예수님에 논의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카야파와 그의 동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가증스런 계획에서 마저도 당신의 선한 의지를 담담히 그리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야파의 말대로 거룩한 곳과 자기 백성이 짓밟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죽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더 큰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모든 민족이 죄를 짊어지고 사는 것보다는 예수님께서 희생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와 잘못들을 용서하고, 그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겪고 볼 때마다 “왜, 하느님은 이런 고통과 악을 허락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허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은 카야파와 그의 동료들처럼 자기 지위와 권력, 목숨 그리고 재산을 지키는 것을, 마치 하느님의 거룩한 곳과 하느님 백성을 지키는 것이라 포장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때로 우리들도 카야파처럼 자신이 손해 보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죽이면서도 겉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혹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단체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상처 입히는 일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다시 마음으로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들을 위해 채찍을 든 경우는 있지만 당신을 핍박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채찍은커녕 거의 항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에 연민의 마음을 갖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십자가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위해 바치는 봉헌과 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의 첫 자리는 자신이 아닌 하느님의 거룩한 삶이 깃든 세상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부활을 잘 준비하기 위해 남은 성주간 동안 다른 이의 마음과 생각 속에 담긴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합시다. “주님, 오소서. 다른 이들의 사랑과 아름다움 속에서, 그리고 인내와 용기 안에서 당신의 부활을 보게 하소서. 아멘.” |
[묵상] 무엇을 위한 거룩함인가? l 이회진 신부님 /2007.03.31
2007. 4. 1. 오전 8: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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