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2007.4.1 /<주님 수난 성지주일>주님이 가신 순종의 길 - 하성호 신부님

2007. 4. 1. 오전 8:32:47

글자

주님 수난 성지주일 2007.4.1 (이사 50,4-7/ 필리 2,6-11/ 루카 22,14-23.56)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고 또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곰곰이 생각하며 운명이나 팔자라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손 하나 꼼짝하지 않고 늘 생각만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죽자 사자 늘 땅만 파면서 먹고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운명은 남자나 여자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 있는가하면,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함으로 정해지는 운명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성직자나 수도자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들은 평생 순명하며 살겠다고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한 이들입니다.

저는 주님 성지주일을 맞아 주님의 운명, 주님의 팔자, 주님이 가신 순종의 길에 대해 묵상을 하였습니다. 순종의 길은 참으로 고독하고 험난하기만 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생을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어쩜 불가능한 지도 모릅니다. 나의 본능이 한사코 밀어내는 그런 뜻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순명한다는 것은 사람의 피를 바싹바싹 말리는 번민의 고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나의 단순한 직업이라면 차라리 사표라고 던지겠지만, 그 순종이 나의 신원(身元)과 결부될 때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나의 모든 욕망과 나의 생각을 비우고 나에게 맡겨지는 바로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전장에 선 군인은 총알이 빗발치는 사선(射線)을 향하여 앞으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자신의 목숨에 대한 생각보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오늘 우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묵상하게 됩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온 나라가 들떠 메시아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루살렘의 골목길을 생각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 입성이었습니다. 그 입성은 영광의 입성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어야 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 죽음으로 뛰어드는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입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라한 예루살렘 입성은 우리들에게 그 길이 바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길, 절대 순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운이 좋은 사람들은 살아남지만, 예수님이 입성하여 맞이하여야 할 죽음이란 그 피할 수 있는 확률이 “0” 제로입니다. 100% 죽음만이 기다리는 죽음을 향한 입성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 죽음의 운명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까?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는 길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첫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모든 인간, 나와 너의 불순종이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고, 또 지금도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 5,19)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죽음의 운명을 회피하시지 않으시고, 비우고 비우신 마음으로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초라한 한 인간 예수를 우리는 우리의 주님,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자신의 세속적인 부귀(富貴)와 영달(榮達)에 붙들려 고귀한 주님의 뜻에 귀를 막고 눈을 감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주님의 뜻이 우리에게 죽음의 순종을 요하는 길이라 해도 꿋꿋이 흔들림 없이 우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는 저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주님의 눈길이 바로 지금 우리를 향합니다. “쟁기를 손에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가 9,62)라며 우리의 길을 재촉하십니다. 주님은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해 바로 나,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길이 비록 우리에게 고독한 십자가의 길이라 해도 우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선 바로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에 단신으로 홀로 서계신 저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우리를 손짓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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