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금요일 2007.3.30 (예레 20,10-13/ 요한 10,31-42)
만일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나선다면 우주선 안에 머물러 있던지 우주선 밖을 나갈 때는 산소통을 짊어지고 다녀야 합니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깊은 곳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산소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태양, 공기, 물 없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들의 고마움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것들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고서 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행하며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 떠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보다는 훨씬 삶의 여건들이 좋은 환경 속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오늘날에도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숨결처럼 그들 삶에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이 지구상에 버젓이 한 민족으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백성들은 먹고 살만하니까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벌은 끔찍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지도자들은 살해되고 노예로 끌려가는 유배라는 처절한 시련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오늘 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주 하느님을 떠나 제 멋대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토록 경고를 하였지만, 그 백성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을 떠난 그 백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그 처참한 박해는, 예언자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그 외침을 외면하였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어떠하였는지를 백성들에 깨닫게 하여주었습니다. 유배의 처참한 경험은 이제 이스라엘 한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공기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린 공기를 생각조차 않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도록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없이 못 산다고 난리치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갖가지 사악한 사회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모든 인간들이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루에 단 1분이라도 한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한탄을 해보기도 합니다. 공기가 없으면 모든 생명체는 죽고 맙니다. 돈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느님 없이는 우린 죽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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