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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금요일 2007-03-30 복 음
그때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지난 화, 수, 목요일에 요한복음 8장 말씀을 들었는데 끈질기게 불신하는 유대인들과 더불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10장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유다인들의 성전 봉헌 축일에 있었던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고 당신을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말씀하신 것을 두고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판단하여 돌로 치려한 사건입니다.
유다인들의 성전 봉헌 축일은 기원전 167년경에 유다 마카베오 일가가 로마제국에 맞서서 성전을 되찾아 정화한 사건을 기념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로마황제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신격화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람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 두 가지 면에서 부정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동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보았습니다. 둘째, 당시 로마 제국과 유다지역을 지배한 안티오쿠스 4세가 자신을 신격화하였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로마제국과 로마 황제에 대한 반감을 지니고 있었고 하느님의 아들 또는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무척 싫어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셨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신들이며 지존의 아들들이로다”(시편 82,6)라는 구절을 통해 당신을 변호하십니다. 이 시편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변호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서 세례받으셨던 요르단 강 건너편 즉 공생활의 출발지로 가시어 머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장면을 마르코 복음서에도 볼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 즉 유대인들의 최고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재판받는 장면입니다.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그렇다.”( 마르 14,61-62)
오늘 날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시기 전에는 황제들이 자신을 신격화 할 때만 그렇게 부르게 하였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 큰 축복을 잃지 않기 위하여 믿음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 예수님, 그럼에도 완고한 마음과 돌멩이로 무장한 이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아무리 하느님의 일을 하여도, 아무리 좋은 일을 하여도 증오심과 살의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바늘구멍 같은 눈을 뜨기 위해 온 힘으로 몸부림쳐야 함에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빛을 향해 눈을 열고 마음으로 듣는데서 신앙의 신비가 시작됩니다. 나에게 다가온 말씀을 받아 안지 못하고 바리사이를 바라보는 답답함이 나 자신을 향한 답답함으로 변해버립니다. 오늘 하루 주님 당신 말씀 안에 머물며 해방된 자유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시빗거리에 휘말려도 복수하지 않는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
사순 제5주간 금요일 2007-03-30 /하느님의 아들 - 방선도 신부님
2007. 3. 30. 오후 11: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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