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07-03-22/하느님의 신비 - 방선도 신부님

2007. 3. 22. 오전 8:43:57

글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2007-03-22

 

 

복음: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이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강      론

 

신부로 살다보면 신자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비신자 혹은 무신론자를 만나기도 하고 반가톨릭적인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신부도 사람인데 좋은게 좋은 거라고 웃으면서 대해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비과학적인데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따질 만도 한데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유명한 과학자들이 냉철한 논리와 과학적 식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 말대로라면 뛰어난 과학자는 성경을 믿어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과학자들이 왜 하느님과 성경말씀을 믿는지는 제가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저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연을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하나를 알게 되면 더불어 모르는 부분들이 더 많아진다는 면이 있습니다. 그 신비로운 면들이 과학자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자연의 신비로운 면 뒤에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는 거지요. 자연의 신비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크나 큰 신비로, 초월적인 신비로 남아 계십니다. 창세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은 피조물을 벗어나 초월적인 존재로 계신 분이시기에 우리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적 능력으로 하느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에만 우리는 하느님을 알려주신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초월성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는 부정신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긍정신학’은 ‘하느님은 무엇이다’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지만 부정신학은 초월적인 하느님을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하느님은 무엇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립니다. 부정신학은 하느님과 관련이 없는 것을 계속 제외시켜 나감으로써 하느님의 초월성을 표현하려 했지요.

하느님의 초월적인 신비를 대하는 사람의 상황은 다양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무지의 구름 속에서 앞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때로는 불빛도 없는 칠흑같이 어둔 밤에 싸여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사실 신비로운 하느님을 사람의 지식이나 이성이나 관찰력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방법으로만 하느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이성이 아닌 믿음과 사랑과 기도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겸손한 사람만이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믿음과 사랑과 기도가 없으면 하느님의 신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방금 들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에 관하여 증언하시고 변호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진심이 담긴 복음말씀을 단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상세히 설명해주셔도 듣는 사람이 머리를 써서 알아듣고자 한다면 얻는 게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신비를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차례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는 우리 자신을 쇄신하여 세상살이도 신앙살이도 새롭게 하는 때입니다. 그동안 지식과 이성과 논리를 통해서 생활했다면 지금은 겸손되이 믿음 안에서 사랑과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에 다가서야 할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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