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2007년 3월 4일 [강론] 사순 제2주일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2007. 3. 4. 오전 8:55:28

글자

사순 제2주일              2007년 3월 4일  


루가 9,28-36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 세 명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알립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것은 구약성서에 산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진 것은 땅에서 사람들이 보던 그분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특별한 교감(交感) 안에 사신 분이었다는 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초기 교회가 예수님을 알아듣는 데에 그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입니다.


유대교는 하느님에 대한 모세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종교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면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느님이 계셔서 생명이 태어나고 자랍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셔서 인류역사 안에는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선한 실천들이 있습니다.(출애 33,18-19). 구약성서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받들어서,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실천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계약은 두 당사자가 앞으로의 행동 양식을 약속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겠고, 이스라엘은 그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충실히 실천하지 못하였을 때, 예언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왕이나 제관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으로 사람들을 억누르고 착취할 때, 예언자들은 그들을 비판하면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 기득권자들로부터 박해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당신 자신에 대해 가르치거나 당신의 권위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 들린 이들에서 마귀를 쫓으셨습니다. 간질 환자나 정신 분열환자들을 그 시대는 마귀 들린 이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연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사람들은 그분을 예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군중이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마태 21,11)라고 환호한 사실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세로부터 시작된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게 충실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면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다가 생명을 잃었듯이, 예수님도 하느님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설명하는 오늘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리 보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할 때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초막 셋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엉뚱한 제안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떤 망설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베드로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설명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깨달은 바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에서 들렸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알려면,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초기 교회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하늘나라의 호적을 확인하고 나온 말이 아닙니다. 친자(親子) 확인을 위해 유전자 감식을 한 결과로 나온 말도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히 있었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병을 고치신 것은 그분 안에 있었던 하느님 생명의 발로였다는 말입니다. 유대교 기득권자들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며 그들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죄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면서 그들을 살리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 안에 살아 계셨던 하느님의 생명을 알아보고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가 자유롭게 실천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종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나는 여러분을 친구라 불렀습니다.” 요한복음서(15,15)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조건 순종하면서 미성숙하게 사는 종이 될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친구는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벌이 두려워 눈치 보며 행동하지 않습니다. 친구는 친구의 뜻을 실천하여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하느님의 생명을 자유롭게 실천하며 당당하게 사는 사람일 것을 원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이 알리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와 믿음입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있어서 예수님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예수님의 죽음이 그분을 결정적으로 알아듣게 하는 열쇠였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죽기까지 실천하셨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생명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자녀 되어 당당하게 사는 길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으로부터 혜택을 얻어 이 세상에서 잘 살아 보겠다고 눈치 보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 아버지의 자녀들인 이웃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시선으로 새롭게 봅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자기가 할 일을 찾습니다. 아버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자녀는 그 아버지의 자녀들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실천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씀이 하늘에서 들리었다고 말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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