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골짜기를 내려가리 [ 류 해욱 신부님 ]

2006. 11. 16. 오전 9:28:03

글자

골짜기로 내려가야 하리라


  오늘 새벽 4시 전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일찍 잠에서 깬 것은 어제 오늘의 강론 준비를 제 나름대로 준비했었지만 제 안에서 뭔가 미진하게 생각되었나 봅니다. 다시 피정의 마지막 강론에서 내가 정말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기도하고 생각하면서 아예 강론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제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오래 전의 제 작은 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정일우 신부님의 나눔이었습니다.

 

  먼저 제 체험부터 말씀드리지요. 88년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리던 때, 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 않은 벌링갬이라는 타운의 아름다운 숲이 있는 피정 집에서 6주에 걸친 ‘A Internship for the art of the spiritual direction’ 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지요. 영적 지도를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지요. 제가 어제 강의에서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이 예술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사랑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계속적인 연마를 통해서 익혀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영적지도도 하느님이 주신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익혀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예술이라는 말이지요. 하루 일과가 8시에 시작해서 때로 저녁 9시에 끝나는 상당히 빡빡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아주 좋은 지도자들과 함께 참여자들 덕분에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냈었지요.

 

제가 계속 영적지도와 피정지도를 주 사도직으로 하게 된 것도 아마 벌링갬에서의 특별한 체험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피정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은 곳이라고 할까요? 하하. 저는 영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 자주 벌링갬의 아름다운 숲을 떠올립니다. 여러분들도 그럴 때 말씀의 집의 정원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프로그램 중에 직접 피정 지도를 하면서 supervision(지도)을 받는 과정이 있었는데 저는 미국인 세 분과 한국인 한 분을 지도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 사람들에게 피정 지도는 좀 두렵고 떨렸어요. 그런데 그때 정말 저는 피정 지도자는 피정에 동반할 뿐이고 진짜 지도는 주님이 하신다는 체험을 했지요. 제가 지도했던 미국인 중 한 분은 50대 후반의 아주머니였는데 17세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그때까지 비참한 삶을 살았고,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예수쟁이들을 미워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분이 피정 끝나기 전에 제게 이렇게 말했지요.

  “I saw Jesus in you. (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네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네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나도 이제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제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상상하실 수 있겠지요?  피정이 끝나서 헤어지는 날은 그분이 저를 포옹하고 놔주지를 않는 거예요. 사실 오늘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고요.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함께 프로그램을 했던 한 사람 (그곳에서 가까운 친구가 되었음)이 사정이 생겨서 하루 전날에 떠나야 했어요. 마지막 날에 전부 체험 나누는 과정이 있는데 자기가 못하게 되어 너무 섭섭하다고 글로 적어서 줄 테니 저보고 대신 읽어달라는 것이었어요. 버클리대학교 영문과를 나온 친구라 그런지 글을 아주 잘 썼더라고요. 지금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저는 이 산 위에 장막을 치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I want to pitch a tent on the mountain.) 6주 동안의 벌링갬에서의 체험은 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분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취하고 사랑에 빠진 것이지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 저는 골짜기 (valley)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골짜기에 내려가서 이곳에서 만났던 주님, 그분의 사랑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골짜기로 내려가면 저는 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가르쳐 주신 그 사랑을 나누면서 살겠습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주님에게서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서 배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저는 이 분의 말에 피정이 끝나는 우리 모두가 새겨들어야 하는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정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이제 삶의 터나 사도직 터로 돌아가서 구체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거기 머물면 안 되지요. 우리는 그 사랑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여잡으려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말씀하지요. “갈릴레아로 가서 내 형제들에게 전하여라.” 심순애가 이수일을 붙잡을 때 ‘놔라.’고 했던가요? 하하. 갈릴레아는 바로 우리 삶의 터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정일우 신부님 이야기인데 핵심은 앞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 마무리 강의에서 영신수련 전체의 요약과도 같은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강의 후에 제가 제 강의에 대해 성찰하면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지만 충분히 예를 들면서 핵심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을 한 마디로 하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정일우 신부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나눔으로써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을 나무를 보는 것에 비유했지요. 우리는 흔히 ‘풀 한 포기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고 말하지요. 정말 우리는 아름답게 핀 꽃 한 송이에서 그 꽃을 만드신 하느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를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에게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에게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 더 쉬워야 할 것 같은데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나무나 풀잎, 꽃 등 자연에서는 쉽게 하느님을 느끼면서도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에게서는 하느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바로 인간에게서 느껴야 합니다. 인간에게서 하느님을 느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보다는 오히려 동물인 개에게서 하느님을 쉽게 느낍니다. 개를 사랑하기가 더 쉽습니다. 애견이라는 말이 있지요. 왜 애견이라고 할까요? 인간보다 개를 사랑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내 마음 안에서도 부활하셨으니 내 마음 안에서도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안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전철 안이나 버스나 시장 등에서 만나는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가오십니다.

  (정일우 신부님이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나눕니다.) 어느 날 밤 전철을 탔는데 제 앞에 35~36 살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름다웠습니다. 아무런 긴장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이 제게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부활 체험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서로의 내면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참으로 행복하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잔치에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셨다고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에게서 하느님 아버지를 보는 재미로 세상을 사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그런 재미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피정 끝나는 여러분들에게 축하드리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피정이 끝나는 이 때가 아주 중요한 때입니다. 우리 모두 피정에서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질투가 많은 악마가 견디지 못하고 안달을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조심하십시오. ‘다음 기회를 노리던’ 악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속삭일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피정에서 대단한 체험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영적 교만’을 불어 일으킬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열흘간이나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피정을 했는데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고 공허하게 느끼도록 유혹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악마의 장난일 수 있으니 잘 식별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주님께 신뢰하십시오. 주님이 유혹자보다 훨씬 강한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유혹이 왔다고 느끼면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단순하게 ‘물러가라’고 명령하십시오. 악마는 약한 자에게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 약합니다. 우리가 강하신 주님께 의탁할 때 악마는 두려워 할 존재가 못됩니다.

  우리 모두 늘 잊지 않기로 해요.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우리가 돌아가는 삶의 터에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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