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6. 오전 10:29:48

글자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제 1독서 : 사도 6,8-10;7,54-5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복    음 : 마태 10,17-22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가끔 성실하게 살면서 하느님을 믿고 또 누가 보아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도하고 또 성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사업 실패의 시련이 닥치는가 하면 큰 병이 들어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며, 왜 중병에서 구해주시지 않는지 의문이 듭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천벌이라도 좀 받아서 어떻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고약한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을 보고 도대체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회의를 품어보기도 합니다.
   오늘 스테파노의 죽음은 이러한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교회는 스테파노를 첫 순교자로 정했습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이 말씀을 쫓아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처음으로 순교한 분이 바로 스테파노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시작과 함께 예수님을 주님으로 증거 했다가 돌아가신 첫 번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스테파노에게는 첫 순교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이 붙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마태10,17)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시련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미리 준비를 시켜주시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두 너희의 말을 잘 따르고 하는 일 마다 성공할 것이다.”라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느님을 믿으면 시련이 극복되고, 안되던 일도 잘 되며 원하는 대로 풍요로워지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자들을 파견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런 성공이나 탄탄대로를 보장해 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감옥에 갇히고 시련을 당하며 심지어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의 삶을 살다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그리스도교를 믿던 많은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숨거나 피하는 등 몸을 감추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테파노는 용감하게 유다인들 앞에서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증언하다가 돌에 맞아 죽게 된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스테파노가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놀라운 일들과 굉장한 기적들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파노는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는 처참한 종말을 맞이합니다. 안타깝지요. 그렇게 성령에 충만하고 하느님의 뜻을 살며 하느님께 간구 하면서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스테파노를 구해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돌에 맞아 죽기까지의 그 고통스런 상황에 그대로 놔두십니다. 스테파노 역시 그 극심한 고통에 절규하거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성령에 충만하여 오히려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선하게 간구하는 스테파노를 즉시 구해주시고 악인들을 보란듯이 다스려 주시기를 바라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대로 놔두시지요.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 힘든 고통 가운데 하느님이 함께 계셨다는 것을 누구나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스테파노가 죽음으로써 유다인들은 자기네들이 승리자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그리스도인들이 무서움에 떨며 하느님을 떠나는 배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스테파노의 죽음이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로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스테파노의 죽음을 목격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거처를 옮겨가기 시작하였고 그리스도교는 안티오키아에서 소아시아로,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온 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그 바탕이자 구체적인 사건이 바로 스테파노의 순교였음을 지나온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뜻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하느님께서 놀라운 증표를 즉시 보여주시기를 바랬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섭리로 스테파노의 죽음을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작은 일로 희희낙락하고 희희비비합니다. 사소한 것에 금방 좋아하다가 또 금방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어째서 이렇게 자주 변하고 흔들리는 것일까요?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사람한테 마음을 두면 이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어렵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고 좀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뜻 안에서 묵묵히 자신을 찾고 완성해나갈 뿐입니다.

   하루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신자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참 냉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신자들에 대한 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제 마음을 3,900여 명이 넘는 모든 신자에게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성실히 강론을 준비하여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목자로서 열심히 사목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하고,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생각한 나름대로의 제 마음의 표현의 한 방법이고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집착을 안 합니다. 사람한테도 집착하지 않고 물건에도 별 욕심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취미에 몰입하는 것도 아닌 것이 테니스를 좋아하지만 할 여건이 안되면 그저 학교 운동장을 뛰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할 뿐입니다. 집착하면 결과는 고통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떠나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어울려 살면서도 중심은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첫 순교자 스테파노처럼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스테파노 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사고 방식과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만 세상을 읽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들 때가 없었는지, 또 나의 좁은 사고 안에 하느님을 가두어 재단한 편협한 사람이 될 때는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느님을 헤아린다면 계속해서 사소한 것에 흔들리고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테파노와 같이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의미 없는 것들에서 의연해지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나를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큰 결실로 열매 맺어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참 고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순교로 증언한 그의 믿음이 우리 안에서 굳건히 자라나게 되기를 다시 한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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