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2006.12.26.화
마태오 복음 10장 17-22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한 방 민경철 신부
어떤 유명한 테니스 선수에게 질문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공격을 받아치기가 가장 어렵습니까?”
사람들은 강력한 서브나 스매시 혹은 다운 더 라인 패싱 샷, 이 정도를 기대했는데
“제일 마지막 한 방이요”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한 방만 받아 넘기면 이기는데 이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
비단 테니스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군인들의 행군 시 낙오병은 중간 지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풀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잘 버텨냅니다. 조금만 더 참아내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종착점을 확인한 그 순간, 마지막을 넘기지 못하고 퍼져버리거든요.
순교자들도 수많은 위협과 고초 앞에서 잘 견뎌왔는데
마지막 순간이 제일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의 고통이 이전에 받은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없는
미소한 것이었을지라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는
주님의 말씀. 우리의 힘만으로 견디어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지막 한 방에 우리를 감싸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긴 말씀이지요.
힘이 나는군요.
희생
오늘도 역시 식당 앞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외식이랍시고
조금 비싼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양말을 파는 젊은 노점상인의
고구마 식사가 바로 눈에 띈다. 지난 번에도 평소 맛이 궁금했던 별난 요리를
시켜먹고 나오던 길에 여지없이 차가운 도로가에서 도시락을 드시던 한 할머니의
초라한 점심을 목격해야 했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괜시리 우울해져서
예수님께 따진다. ‘예수님, 왜 자꾸 제 가슴을 치시게 만드십니까? 제가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먹는 건데 꼭 저분들의 모습을 이렇게 리얼하게
보여주셔야 합니까?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보약이라고, 아파서 약 사 먹느니 비싸지만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일 잘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자꾸 제게
이 모습들을 보여주셔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절 망설이게 만드시는 겁니까?
이유를 좀 알아야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절더러 통이 작다느니 하는데
다 예수님이 주신 이 양심 때문 아닙니까? 이 양심도 좀 스케일이 클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참 맛있게 먹었다… 하느님께 감사, 땡큐! 땡큐! 두 배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저에게 뭘 더 원하시는 겁니까?
어디 예수님도 한 말씀 해보시라구요.’ ‘네가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다. 난 너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네 눈에 띈 건 내 탓이 아니다. 네 눈 탓이겠지.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서 아마 눈이 더 밝아진 모양이다. 그리고 그들을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게 보는 모양인데 고된 일을 하고 한 끼 식사를 하는
모습이 숭고해보이지는 않느냐? 초라한 식사일망정 맛있게 먹는 그 모습에서
좀 배우는 것이 없느냐 말이다.’ ‘아이고 예수님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더러
절제하라고, 혹은 나누라고 하시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좋은 것, 최상의 것만 찾지 말라고 한 말씀 딱부러지게 하시면
더 알아듣기 쉽겠습니다.’ ‘너 알아서 해석하려무나… .’
김사비나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