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우리는
오늘 화답송의 표현처럼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불렀고,
온 세상은 즐거워 환성을 올렸고, 환호를 했습니다(시편98,4-5).
오늘 제1 독서(이사 52,7-10)는
“주님의 거룩한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기”(시편 98,1)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느님을 본격적으로 섬길 수 있음을
니네베의 멸망을 알리던 나훔 예언자의 말씀(나훔 2,1)을 끌어들여 선포합니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마음껏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셨기” 때문에
모두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런 의미와 더불어 성탄절의 의미를 잘 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2 독서(히브 1,1-6)는
대림기간동안 들었던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치 오늘 복음의 내용을 요약이라도 하듯이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직접적으로 하시는 마지막 말씀이시라고 합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예수님의 사명에 대하여 짧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의 요약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와 계획에 대하여
지혜문학적으로 서술하면서(잠언 8; 집회 24; 지혜 7-8 참조)
아드님의 탄생이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고,
그 아드님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빛이심을 시적으로 표현한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의 긴 시 속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저는 짧은 시, 즉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것만 읽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5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매우 논리적입니다.
첫 단락(1-3ㄱ절)과 마지막 다섯째 단락(14절)은
같은 내용으로 시작과 마무리를 지으면서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그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시다가
아드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둘째 단락(3ㄴ-5)과 셋째 단락(9-11)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하느님으로 맞아들이지 않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넷째 단락(12-13)은
어젯밤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심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주 나타나는 “말씀”이라는 용어는
성경이 쓰일 당시에
우주의 원인이며,
최고의 지혜이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를 설명하는 철학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사가는
말씀이라는 용어의 이러한 의미를 살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자주 사용하듯이 “말이 살아있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부각시키는 가운데
아기 예수님께 “말씀”이라는 용어를 적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을 비추는 빛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보내셨으나
세상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생명의 빛을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빛을 보고,
말씀을 알아듣고,
하느님의 아드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은총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중세기의 많은 화가들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그림을 그릴 때에는
항상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영광의 광채”(히브 1,3)가 나와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삼왕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그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빛을 통하여
피조물의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고 있다는 신앙적 진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비록 요한복음에는 “지혜”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지만
어젯밤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하느님 본질의 모상”(히브 1,3)이시라면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심의 모상입니다.”(지혜 7,26)
또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원한 빛의 광채”(지혜 7,26)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하십니다.”(지혜 8,1)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제와 예지를,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주시는”(지혜 8,7)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집회 24,22)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강력하게 지탱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의미와 잘 부합하는
구약성경의 잠언의 말씀을 읽으면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지혜가 부르고 있지 않느냐?
슬기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느냐?
지혜가 언덕 위,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네거리에 서 있다.
성읍 어귀 성문 곁에서, 여러 대문간에서 외친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른다.
너희 인간들에게 내 목소리를 높인다.
어리석은 이들아, 영리함을 터득하여라.
우둔한 이들아, 마음을 깨쳐라. 들어라,
나는 고귀한 것들을 말하고 내 입술에서는 올바른 것들이 흘러나온다.
내 입은 진실을 말하고 내 입술은 불의를 역겨워한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의로울 뿐 거기에는 교활한 것도 음흉한 것도 없다.
그 모든 말이 깨닫는 이에게는 옳고 지식을 찾는 이에게는 바르다.
너희는 은이 아니라 내 교훈을 받고 순수한 금이 아니라 지식을 받아라.
지혜는 산호보다 낫고 온갖 귀중품도 그것에 비길 수 없다.’”(잠언 8,1-11)
[강론] 성탄 낮 미사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6. 12. 26. 오전 10: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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