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대림 제 3 주간 수요일./“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21. 오전 12:14:52

글자

다해 대림 제 3 주간 수요일.

2006. 12. 20.

토평동.

이사 7, 10-14.

루카 1, 26-38.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제가 존경하는 안셀름 그륀은 ‘믿음은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이하 내용은 안셀름 그륀의「믿음」이란 책의 내용을 참조로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 이러한 견해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의 주인공 톰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죠. 톰은 자신이 잘못한 일 때문에 20미터 길이의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는 벌을 받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친구들이 톰을 놀리는데, 톰은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고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친구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킵니다. 그리고 오히려 친구들에게 대가를 받고 그 일을 맡깁니다. 이것을 보면서 안셀름 그륀은 믿음이란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빛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석이 없는 삶은 없는데,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자신의 삶을 결정짓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은 내 삶을 기쁨과 희망으로 해석함으로써 살만한 가치로 만들어 냅니다. 물론 그 안에는 분명 주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늘 나를 보살피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는 것이죠.

만일 내가 아침에 나가면서 좌절감에 젖어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체험합니다. 그러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내 일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 됩니다.

어제 판공성사가 끝나고 TV를 켰는데, 마침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모두가 암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살아야 했지만, ‘살 수 있다는 확신’ 속에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장기적으로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보면, 자신에게 뚜렷한 희망, 구체적 희망이 있을 때 극복해낸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딸 결혼식까지 살아야지’ ‘손주 볼 때까지 살아야지’ 이런 구체적인 희망은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그림자를 없애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뚜렷한 희망, 구체적 희망은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주님을 뵙는 것이 최종 목표이지만, 내가 죽든지 살든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살피신다는 것이고, 그것에 얼마나 확신을 두고 있는가? 저 암을 극복해 낸 사람들처럼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희망으로 만들고, 행복으로 만들고, 톰의 경우처럼 가치 없어 보이는 일도 가치 있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죠.

오늘 복음에서의 마리아. 진정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된 장본인입니다. 당시 처녀가 아이를 밴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믿었기에 자신에게 닥쳐온 부정적 일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느님의 재해석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것이 하느님 편에서의 믿음입니다. 그분께서는 먼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마리아가 맡아주리란 믿음을 먼저 가져주신 것이죠. 그리고 마리아는 그분의 믿음에 순명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믿음으로 재해석하면서 하느님의 믿음에 동참한 것입니다.

순명(oboedientia)은 ‘oboedire’에서 왔는데, 이것은 ‘듣다’는 뜻의 ‘audire’와 어원이 같은 것입니다. 즉 진정한 순명은 먼저 듣고, 들은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란 말인데, 순명의 마리아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믿음에 동참하며 행동에 옮기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신앙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앙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들음을 통해 결단을 내리고 실천했을 때,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그 잉태 시기는 바로 오늘 복음 38절과 39절 사이입니다. 즉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응답했을 때, 그리고 천사가 그 응답을 듣고 떠나갔을 때, 예수님의 강생은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실 작정을 하신 분이십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공급받는다는 것인데, 이미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공급해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이미 하느님께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한 말씀으로만 응답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은총을 주리라하고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분의 준비를 바라보면서 “예, 이루어지십시오”(루카 1, 38)하고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불가능하다고 내가 발을 내딛지 않아서 그렇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루카 1,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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