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대림 3주일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6.12.19

2006. 12. 19. 오후 7:17:19

글자
오늘은 대림초들 가운데 장밋빛 초에 불을 붙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대림 3주일을 기쁨의 주일이라고 하면서
미사 때 장미 빛 색깔의 제의를 입기도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서
오늘 제2 독서(필리 4,4-7)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라고 장밋빛 같은 권고를 합니다.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기쁨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느끼게 되는 날에는
우리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대림 3주간은 구세주의 오심을 기뻐하고,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의 너그러운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야 하며,
그런 행동을 통해서 주님이 오셨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오늘 제1 독서(스바 3,14-18ㄱ)인
스바니야의 예언이 선포되던 때는
요시아(B.C. 639-609 재위: 2열왕 22,1-23,30) 임금이 등극했을 때이고,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개혁이 요청되었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을 55년 동안 다스리던 므나쎄(B.C. 698-643) 임금은
하느님께 역겨운 짓을 많이 저지르고,
자기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도록 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유다 땅에 재앙을 선포하십니다(2열왕 21,10-15).
이런 재앙의 공포 앞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온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기쁜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백성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께서는
불의를 저지르던 못된 임금들(이사 1,21-26)을 물리치시고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며,
그때에는 예루살렘이 “정의의 도읍,
충실한 도성”이라 불릴 것이기(이사 1,26) 때문에
백성들은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바니야 언자는 오늘 제1 독서의 후반부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오히려 더욱 기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정작 기뻐해야 할 존재는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오히려 하느님께서 더욱 기뻐하신다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기쁜 아들보다도
돌아온 자식을 보고 더욱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루카 15,20-24)을 연상케 합니다.

지난주 복음에 이어서
오늘도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루카 3,10-18).
오늘 복음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10-14)과
지혜문학적 사색(15-18)으로 나누어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군중은 물론이요 세리와 군인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단순히 예언자만이 아니라 지혜의 스승이기도 했던
세례자 요한은 각각의 부류들에게 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처방을 주고 있습니다.

유다인 군중들에게는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을 나누라는 이 가르침은
“너희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없어야 한다.”(신명 15,4)는
유다인들의 율법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도 역시 이런 의미에서
“자기 재산의 반을 나누어 주겠다.”(루카 19,8)고 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리들에게는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 하고,
군인들에게는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대답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제국과 자기 나라를 위해
이중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몹시 괴롭히는 못된 직업인이었습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군인들은 동원 예비군이 아니라 상근 현역 군인이기 때문에
전쟁이 없었을 때에도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들고 폭력으로 강탈하고 갈취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히던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리와 군사들은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여기던 이들이
자신의 예언을 들으면서 구원에 동참하고 싶은 의지를 표현했음에
세례자 요한은 어떤 사람도 구원으로부터 제외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이 실천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정의와 공평을 예로 들면서 사랑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도 거룩해지고(레위 19,2)
동족을 속이지 않고 사기를 치지 않는다면(레기 19,11)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 복음사가는
신앙생활에서 탐욕이 가장 커다란 죄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사도 2,37-47 참조).

세례자 요한의 이러한 가르침에
군중들은 그가 메시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군중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할 때부터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세례예식을 통하여 자신과 예수님의 차이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종노릇을 할 자격도 없고,
그분이 지니신 신랑의 자격을 빼앗(신명 25,5-10; 룻 4,1-9)을 능력도 없다고 합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메시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은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을 뜻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심판을 뜻합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이제는 정말 회개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도끼로 찍어서 불 속에 던지듯이(루카 3,9)
쭉정이는 모두 불에 태워버리신다고 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열매를 생각하도록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이
“이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루카 3,18)고 하는데
이는 세례자 요한 역시 신약시대의 인물로서 복음의 선포자로 인정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 역시
복음에 나타나는 군중들과 세리들과 군인들처럼
아직도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계시지는 않겠지요?
군중들이 한 번 물은 것으로 충분했을 터인데
세리들과 군인들은 사랑의 의무에서 비켜나고 싶어서 자꾸 물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것을 보시고
더욱 기뻐하시는 하느님,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기뻐하는 이웃을 보면서
우리는 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어떤 직분에 있든지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정의와 공평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즉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의 기초임을 가르쳐줍니다.

교회는 오늘 대림 3주일을 자선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될 것이며,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 쭉정이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타작마당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쭉정이는 깨끗이 치워지고,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을 만나고,
느끼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만 반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구체적으로 사랑의 실천을 다짐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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