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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수
루카 복음 1장 26-3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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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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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평하신 하느님 민경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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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 가득하신 분 마리아님.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순수함과 거룩함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이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내 처지를 보니까 글쎄… 우리가 받은 은총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느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공평의 기준은 다분히 인간의 논리일뿐입니다. 하느님의 공평이 우리 인간의 눈에는 불공평해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세상이 좋은 것이라고 규정해버린 것 혹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졌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두기에 불공평해보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나만의 위대한 선물은 보이지가 않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있고(마태 5,45; 디도 2,11 참조), 동시에 개개인 모두 알맞은 은총을 나누어 받았습니다(에페 4,7; 로마 12,6-8 참조). 오늘 주님께서 내게 마련해주셨던 위대한 선물 한 가지씩을 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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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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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다른 말인데 요즘 너나없이 헷갈려 쓴다. 이는 국어사전 탓이 아니다. 사전들은 헷갈리게 풀이하지 않았다. 이것을 헷갈리도록 한 것은 내 것을 팽개치고 남 것만 좇아서 살아온 우리네 삶이지만, 국어교육 탓도 들추지 않을 수 없다. 국어교육이 줄곧 우리말의 노른자위인 토박이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드러나는 모습을 서로 견주어 풀이하는 그림씨 낱말이고, ‘틀리다’는 해놓은 일을 과녁에 맞추어 가늠하는 움직씨 낱말이다. “한 가지에서도 아롱이 조롱이가 열린다더니 같은 부모한테 난 언니 아우가 어찌 저리 다를까?” “아니, 어제 내가 다시 해놓은 계산에서도 틀린 데가 있었습니까?” 보다시피 ‘다르다’는 언니와 아우의 모습을 서로 견주면서 쓰고, ‘틀리다’는 해놓은 셈을 사실이라는 과녁에 맞추면서 썼다. 두 낱말이 헷갈리는 데는 까닭이 있다. 둘다 견주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도 견주기를 해서 나타나고, ‘틀리다’도 견주기를 해서 가려낸다. 그러나 ‘다르다’는 두 가지를 서로 견주어 드러난다. 아무런 잣대도 없이 두가지를 나란히 견주면 ‘다르다’와 ‘같다’로 갈라지고, 어떤 과녁이나 잣대를 세워놓고 거기에 견주면 ‘틀리다’와 ‘맞다’로 가려진다. 이런 뜻가림을 내버리고 요즘은 덮어놓고 ‘틀리다’고만 한다. 그만큼 마음은 무뎌지고 삶도 거칠어진 것이다.
김수업 | <한겨레신문> 2006년 10월 10일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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