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는 자선을 지향해야 한다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묵상길잡이 :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든다고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서로의 책임공방이 한창이다. 우리들이 자제와 자기분수를 모르고 흥청댄 결과가 아니겠는가? 회개 없이 건실한 성장도 없음을 알자. 참된 회개는 자선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1. 인기영합주의의 소신 없는 정책이 나라를 망친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지난 한 해 동안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이 생겨난 나라이고, 반면에 극빈 계층이 그만큼 불어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중산층은 줄어들고 부(富)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십여 년째 1만 불 언저리를 맴돌던 국민소득이 갑자기 16,000불을 넘었다해서 놀랐더니, 환율의 요술이라니 재미있는 세상이다 싶다.
지난 정권은 '신용사회 건설'이라는 아름다운 슬로건을 내걸고 길거리와 학교 앞에서 회사마다 경쟁적으로 '카드'발급을 하였다. 수입이 한푼도 없는 대학생도 몇 개씩 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무책임한 과소비 조장은 정부의 시책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카드 빚으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350만이라나?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으면 사회생활은 끝장이다. 카드 빚 때문에 강도질하고 살인하고, 개인이나 가족들이 자살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참여정부'라는 새 정부는 '지방분권', '수도이전'을 부르짖더니, 전국의 혁신도시 건설로 전국적인 투기바람을 몰고 왔고, 온 국민을 땅 투기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소비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검절약(勤儉節約)은 간 데 없고, 대책 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러고는 카드사의 부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모두 막아주었다. 결국 흥청망청 무책임하게 돈을 쓴 이들의 빚을 선의의 사람들이 다 메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은 '공짜 자금'인양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식으로 쓰였다. 참으로 이해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또 하나 '경제 정의'가 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수십 수백 억을 부당하게 꿀꺽 하고 나서도 몇 개월만 살고 나면 석방이니, 누구나 기회가 있을 때 크게 한탕하고 잠시 살면 된다는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 그리고 요즘은 석방되면 장관자리까지 챙겨주고 있다. 수천 억을 해 먹었다는 전직 대통령도 자기 재산이라고는 30만원 밖에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세상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대졸 실업자는 끝없이 늘어나 '구직 난'에 허덕이고, 중소기업은 일손을 못 구해 '구인난'에 시달린다. 귀족 노조는 정치 파업을 일삼고, 기업들은 해외로, 해외로 떠나고 너도나도 해외 이민을 꿈꾼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파산인가? 돈이 돈을 벌도록 하는 구조를 부추기는 투기 공화국이다. 부동산 투기 하나 못 잡는 정책부재의 나라인 셈이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서러움과 아픔은 더욱 깊고 심각해져만 가는 것이다.
2. 내 자신에게 돌을 던지자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세리와 군인 그리고 모여 온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처지에서 어떻게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설파하고 있다. 대림(待臨)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이며, 회개의 시기이다. 자기 빚이 얼마인지를 모르면 갚을 수 없듯이,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면 회개도 불가능하다.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으면, '장기 불황의 늪'이 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위기는 기회라고도 한다. 우리는 모처럼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좋은 기회를 맞았다.
나아가 나는 신앙(信仰)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좀더 새로워지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를 반성해봐야 한다. 가장 완전한 거울인 하느님 앞에 조용히 자신을 비추어 보자. 우리의 내면에 아직도 "내 것을 내가 쓰는데 왜?"라는 식의 극단적 이기주의, "위화감 따윈 내가 알 바 아니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개의 경우 내가 새로워지기 위해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다만 그 문제를 정면으로 대면할, 자신에게 돌을 던질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회개는 은총이다. 나의 문제와 맞설 수 있는 은총을 겸손되이 그리고 간절히 청하자. 그리하여 알찬 판공성사가 되게 하자.
3. 회개는 자선(慈善)에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은 자선(慈善)주일 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와 '단식(고행)'과 '자선'을 회개의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왔다. 교회가 회개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에 자선주일을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개와 보속은 자연스레 자선에로 나아가야 한다. 사랑이 담긴 자선은 회개와 보속의 증거인 셈이다. 사랑이 없는 자선은 거짓 자선이다. 그래서 자기과시로 하는 자선은 회개와 보속이 되기보다는 받는 이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때가 되면 나도 큰 자선을 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지금, 여기서'자선을 하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심은 항상 우리의 형편보다 앞서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푼다는 것은 평소의 연습 없이는 못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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