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웃음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소소한 실생활 속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 풍속이다.
옛날 우리네 이웃들은 신랑신부가 신방 차린 첫날 밤, 문에 구멍을 뚫고 훔쳐보며 킥킥대기 일쑤였다.
아무리 웃을 일 쫓아다니는 호사가들이었다지만, 하필 신혼 첫날밤을 맞이하는 신랑신부를 놓고 그토록 짓궂게 굴었을까?
오랜만에 눈요기 거리가 생겨서? 아니면 자신들의 아련한 옛일을 추억하느라?
생각해 보라. 모든 남자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일단 신랑이 되면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신혼 첫날부터 심리적 부담과 강박증에 사로잡힐 수 있고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백이면 백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그 둘은 중매로 인해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던가? 친밀감은 전혀 없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심리적 거리도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느닷없는 육체적인 결합이 가져올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신부는 신부대로 무작정 달려드는 신랑에 의해 정신적 충격을 받기 십상이다.
이것이 성 기피증과 신혼 우울증, 더 나아가 불감증의 원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잘 알았던 선조들은 킥킥대는 웃음으로 신혼부부를 치료했던 것이다.
아무리 간 큰 신랑이라도 밖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속으로는 ‘에이, 씨’를 외치며 잠시 행동을 중단할 수밖에.
이제 좀 조용하다 싶어 신부의 옷고름을 향해 달려들면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러기를 몇 번,
그 사이에 신부는 남성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생리적 준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구경꾼들은 자리를 비켜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용케도 요즘 성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식후 30분의 원리(빈속에 강한 약을 집어넣을 수 없듯, 30분 이상의 충분한 전희가 필요하다는 뜻)’
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선조들은 웃음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정의 긴장을 해소시켜주고, 여유를 심어주어 그 탄생을 도왔다.
이런 것을 일러 우리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지원 시스템이 사라지고 난 요즘은, 신혼부부들이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입고 입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혼여행을 떠나 별거여행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잦은 요즘 세대에, 우리 선조들의 여유와 웃음이 새삼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