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에서 펌!

2007. 2. 19. 오후 6:44:24

1
글자

`행복` 없인 못살아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마르 3,7­-12)

◆오늘날 현대인들이 몰려가는 곳은 어디인가?

어디 재계발 지역은 없는지, 몸짱을 만드는 곳은 없는지,

넘쳐나는 찜질방과 온천장·헬스 클럽·게임방 등이 현대인들이 모여드는 실상을

잘 말해준다.
작은 본당에서 잠시 도와주던 때다. 매일 성체조배 오시는 한 자매님이 하루는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그 자매님은 글자를 깨칠 수 없는 장애인이라고 했다.

친정에서는 불편 없이 지냈지만 시집가서 얼마 후 글자를 모르는 것이 들통나 남편의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중에 첫아이를 낳았는데 뇌성마비 장애아였다.

그러자 시집 식구들도 대놓고 구박하기 시작했다.

자매님은 갈 곳이 없어 성당을 찾았고 세례를 받았는데 성당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데 둘째, 셋째, 넷째까지도 뇌성마비 아이를 낳았고 냉대는 더욱 심해져 결국

집에서 쫓겨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수녀님, 저는 첫아이 때문에 구원의 열매를 얻었고,

둘째아이 때문에 사랑의 열매를 얻었고, 셋째아이 때문에 겸손의 열매를 얻었고,

넷째아이 때문에 인내의 열매를 얻어 너무 기뻐요”라고 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장애 아이 넷을 파출부하면서 키웠는데 아이들이 일고여덟 살이 되면 그냥 천당으로 갔단다. “수녀님, 제가 키울 능력이 없으니 하느님께서 데려가시더군요” 하면서

그뒤로 딸 셋을 더 두었는데 착한 딸들이라고 얼굴이 환해진다.

막내를 가졌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낙태시키라고 했지만 숨어숨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낳았다면서 “지금 그 아이 없으면 저는 못살아요” 한다.

재롱을 얼마나 떠는지 ‘행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자매님은 “수녀님, 저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 너무 좋아요” 한다.

만약 하느님이 보였다면 돈 있고 힘있고 잘난 사람들이 먼저 성당을 다 메워서

자기같이 글자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사람은 성당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란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으니 늘 성당이 비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가 가고 싶은 때 성당에 들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었다.
어느 곳이나 성당이 텅텅 비어 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비었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인가?

그 옛날 예수님 주위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들도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병을 고치고 빵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는 사람만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군중들은 “우리가 식인종인가?” 하며 모두 떠나갔다.

오늘 우리는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가?

진정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살아 계신 그분 곁으로 가는가,

아니면 이익이 생기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생명과 거리가 먼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문화순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야곱의 우물 1월 18일자 복음및 묵상글 펌.

 

가브리엘

댓글 2

  • 2007년 2월 19일 오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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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2월 20일 오전 1:12

    윗 글의 내용을 천천히 음미해 보니 내자신을 들여다보고 부끄러워서 얼굴울 들지 못할 것 같은 심한 자괴지심(自愧之心)이 느껴집니다. 평소에 시각장애 교우들의 주님을 믿는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고 잡스런 생각이 아니라 순수한 감심(感心)이며 눈으로 보고 이로움과 쾌락을 따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에 속물스럽고 잡스런 것을 보지 않아서 주님을 믿는 마음이 순수하고 거룩하리라는 것이 그 분들의 신앙관(信仰觀)이리란 생각을 했었는데 전례분과장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니 저의 생각이 틀리진 않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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