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빠

2007. 2. 14. 오전 10:01:23

글자

                             

 

바라빠는 이미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만 남아 있는 사형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가 죄인으로 끌려와 십자가를 지고

사형 집행현장 으로 가는 반면 바라빠는 석방이 되었다고

성서에는 그렇게만 기록되어 있다.

 

 

바라빠는 과연 석방이 되자마자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자기 생업으로 돌아 갈수 있었을까,

불과 몇 분전 까지만 해도 자기는 십자가형을 받고 죽을 사람 이였는데

지금은 석방이 되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과연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여기에 대해서 국적은 모르겠으나 페르라게르크 비스트 라는 한 작가는

추상적이지만 바라빠의 그 다음 행적에 대하여 추적한 글이 있었다.

 

 

그의 출생에 대한 내력은 어머니가 창녀이며 그 창녀는 아이의 아비도

알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그 아이를 낳다가 아이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그 자리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이는 역시 악의 소굴에서 자라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 살인을 하였는데

우연히도 그의 손에 죽은 자가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바라빠는 자기가 죽인 자가 자기 아버지란 것을 모르는 것은

물론 그 죽은 자는 기회만 있으면 바라빠 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바라빠는 그를 죽임으로 죄수가 되어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고 집행 날자만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였었다.

 

 

 사형이 집행되는날 바라빠는 석방이 되었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여 쉽사리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를 군중들이 구름같이 몰려가는 것 을 보고 바라빠도 그들과 휩쓸려 주츰 주츰 뒤 따라 가면서,

'도데체 저 사나이가 누구 길래. 왜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저 사람은 누구이며 무슨 죄를 져서 저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내가 갈 길을 대신 끌려가고 있나.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의심을 하면서도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군중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든 것이 현실 같지 않은 몽롱함 속에 어렴풋이 못 박는 망치소리가 들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그 사나이가 하늘을 향해 무슨 소린가를 지르고. 그리고 고개가 떨구어 진다. 그 순간 천지가 갑자기 빛이 없어져 깜깜해 지고.

그래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했던 것들이 현실인지 잠깐 꿈을 꾸었던 것인지 조차 분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감옥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탓에 잠깐 착시 현상을 일으켰으려니 하면서도 의심을 떨치지 못한채  평소 생활해 왔던 술집과 창녀촌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간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주인 여자를 비롯하여 바라빠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와! 와! 바라빠 가 돌아 왔어. 지금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을 바라빠 가 이렇게 살아 돌아 왔어. 바라빠 너는 부활 한 거야. 자! 죽은 자가 살아 돌아 왔으니 부 라 보! 건배!”

 

 

그러나 바라빠는 넋을 잃은 듯 무표정한 채 앉아있는다.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천지가 깜깜했었던 그 순간이 잊혀 지지 않고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견딜수 없는 궁금증에 밖으로 다시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몇 사람들이 모여 뭔가 수군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궁금하여 옆에 가서 들으려 하니 사람들은

바라빠의 얼굴에 칼자국이 볼을 타고 턱 밑까지 길게 그어져 있고

한쪽 눈 밑에는 커다란 흉터로 살색이 검게 착색 되어 있는 등

그 험상궂은 바라빠의 외모를 보고는 하던 말을 멈추고 슬슬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바라빠는 그들이 모여 수근거리는 모든 것들이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사람이 모여 수군거리는 곳으로 다시 찾아가서 들으려 하면

또다시 하던 말을 멈추고는 바라빠의 험한 얼굴만 쳐다 볼뿐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수군거리는 그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따르던 추종자들 이었다.

 

 

바라빠는 끝내 궁금증 을 풀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다시 악의 소굴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는 또다시 반복되는 죄를 짓고 죽어서나 나올 수 있는 지하 천 미터 아래 갱 속에서 발목에 쇠사슬을 매달고 노역을 하면서 하루하루 죽어 가고 있는데.

 

저는 이글을 읽는 도중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어쩌면 바라빠 일지 모른다는 생각.

내 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나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죄의 사슬을 풀어 해방시키신 예수님 을 생각할때.

바라빠는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아닐까 .

 

 

또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던 예수의 추종자 들이 어쩌면 우리들이 아닐까.

전교를 할 때 외모만을 보고 다가서게 되거나 피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을 터였다.

그들에게 전교를 한다한들 저 상태에서 달라 질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우리의 오만과 교만과 위선적인 잣대가 바라빠 같은 외로운 영혼들을 얼마나 많이 비켜가게 했을까. 등 등

 

 

너희는 지구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구의 끝이란 바로 바라빠와 같이 악의 소굴에서 험악한 외모를 지니고 살아가는. 그러나 가슴에는 우리와 똑 같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평생 사랑을 받아 보질 못해서 사랑을 모르는 외로운 영혼들을 가진 사람들을 말씀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너희는 지구의 끝까지 가서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댓글 3

  • 2007년 2월 14일 오후 8:22

    수도원건물 <center><img src=http://tfile.nate.com/download.asp?FileID=24059840 width=600>자매님 명절 즐겁게 보네세요

  • 2007년 2월 14일 오후 11:28

    최익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명절 잘 보내십시요.

  • 2007년 2월 16일 오전 6:57

    삶속에서 빠라바를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새해에도 건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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