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 시작의 첫 장을 열면 마태오복음의 ‘예수님 족보’가 펼쳐집니다. 우리나라도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별히 당시 유다인들에게 족보는 생존권이나 신분을 정하는 잣대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족보에서 좋은 점은 크게 드러내고 나쁜 것은 감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는 다릅니다. 예수님 족보에 나온 이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간계를 부려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근친상간으로 아들은 낳은 타마르, 이방인이며 창녀였던 라합, 자신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한 다윗 등, 그냥 보이는 이름만 봐도 족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신약 성경 첫 장부터 그 부끄러운 이름들을 올린 이유는 무엇인지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고 믿음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웅적 힘으로 이끌어 온 ‘인간의 역사’가 아닌 약하고 죄스러운 인간을 통하여 일하신 ‘하느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으로써 그 모든 역사는 구원의 역사로 바뀝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점점이 찍힌 죄스럽고 못난 모습의 내 역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돌아보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어두운 시간까지도, 예수님 앞에서는 온통 은총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못나고 죄스럽게 살아 온 내 시간들이 바로 주님 구원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복음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내 인생을 이끌어 오신 눈물겨운 주님 은총의 역사를 만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