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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오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치욕적인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때 세리는 자기 민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 제국에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남의 나라에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앞잡이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려고 과다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돈을 위해 영혼과 민족을 파는 세리를 몸을 파는 창녀보다 더 멸시하고 죄인 다루 듯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런 자신의 과거가 못마땅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그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예수님마저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시지 않고 그를 제자로 삼아 공생활 내내 함께하십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보듯, 마태오는 자신이 과거에 세리였음을 떳떳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 삶에서 불만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과거의 상처나 죄가 치유되지 않은 채 열등감으로 작용할 경우, 자신을 혐오하거나 무기력한 생활을 하거나 절망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집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행동을 나쁜 쪽으로 자극하여 ‘파괴적’으로 나아가게 하며, 반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자신감을 얻고자 노력하게 하여 ‘창조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자신의 모든 과거의 상처를 품어 주시는 주님을 통해 치유되었습니다. 그에게 수치스러운 과거는 죄인을 받아들이고 치유하시는 주님 사랑을 드러내는 ‘창조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마태오를 사랑하시듯,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비록 못나고 상처투성이인 우리이지만, 우리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인생의 과거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당신의 창조적 도구로 쓰십니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역사, 어느 것 하나 주님 안에서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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